(10)오마르 카이얌의『루바이야트』|인생관조 넘치는 아랍 민요 시|이만갑<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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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53년 정월 초하루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미국인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만난 중년부부가 호텔에 나를 데려다 주는 도중에 자기네 짐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해서 잠깐 들렀다.
그때 주인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책장에서 얇은 책을 한 권 꺼내 나에게 보여주면서 매우 아름다운 시니 호텔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 책은 피츠 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카이얌의『루바이야트』였다.
처음 보았을 때는 책이 고급종이에 멋있는 활자로 인쇄돼 있고. 군데군데 들어 있는 삽화가 인상적이라는 느낌만 가졌지,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몰랐다. 본래 시를 감상할 소양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지만 영어가 어려워 흥취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면 읽어보곤 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에 드는 구절이 생겨서 자주 읽고 또 소리내 읊어 보기도 했다.
그 중의 한 구절은 너무 좋아서 어느 날 처음부터 사전을 찾아 차근차근 뜻을 파악해 가며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역시 그냥 뜻도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읽는 것보다는 한결 가슴에 와 닿는 대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쁜 일이 계속되면 한가로이 시를 공부할 수가 없어 결국 책장에 다시 꽂아 놓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6월 어느날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을 하다 나는 이와나미(암파)문고로 출판된『루바이야트』를 발견했다. 앞뒤를 가려 볼 생각도 없이 당장 사 와서 읽기 시작했다. 전에 읽은 영문 시 본에는 해설이 전혀 없었다. 오마르 카이얌이 어떤 사람인지,『루바이야트』가 어떤 뜻인지, 번역한 피츠 제럴드라는 사람이 어느 시대·어느 나라 사람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러나 1949년에 초판이 인쇄됐다는 일본어 번역본에는 원저자의생애,『루바이야트』의 뜻과 시의 특징, 그리고 그 시가 유명하게 된 연유 등에 관해서 자세한 해설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영문구절에 해당하는 대목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문정본을 찾아 대조해 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 책이 어디 들어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몇 번 찾아도 나타나지 않아 미국에 주문 할 까도 생각해 보았다. 알고 보니 그 책은 아들의 집에 있었다.
이번 걸프전쟁 때문에 나의 관심은 중동에 쏠렸다. 아랍인의 세계와 이슬람교의 본질에 관해 알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마음속에서 태동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번역까지 해본 일이 있는 칼릴지브란과 함께 오마르 카이얌에 관한 문헌을 찾아보게 되었다.「찾으면 길이 열린다」고 우리나라에도『루바이야트』의 시가 번역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서울대학교 이상옥 교수가 번역한 것이었다.
오마르 카이 얌은 이교수의 책으로는 출생연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지만 대영 백과사전에 의하면 1048년에 페르시아, 즉 지금의 이란에서 태어나 l122년에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수학·천문학에 깊은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 유럽의 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의학·법학·역사학에서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학문보다도『루바이야트』의 저자로 더 유명한데 그것은 피츠 제럴드의 덕택인 것이다.
피츠 제럴드는 찰스 다윈과 같이 1809년에 태어나 다윈보다 한해 뒤인 1883년에 죽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가 번역한 오마르 카이얌의『루바이야트』는 다윈의『종의 기원』과 같이 1859년에 출판되었다. 그 시기는 영국에서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려고 하던 종전의 풍조가 퇴조하고 현금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강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피츠 제럴드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에서 조용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사귄 새커리를 비롯해 테니슨, 카알라일 등 문인 등과는 친교를 유지했다. 그는 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된 친구의 권고로 페르시아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루바이야트』를 번역하게 된 것이다. 번역에 자신이 없었던지 처음 출판했을 때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책도 팸플릿의 빈약한 형태로 겨우 2백50조만 찍었다. 책은 팔리지 않은 채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나 출판된 다음해에 우연한기회로 로제티에게 그 진가가 알려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루바이야트」라는 말의 뜻은「루바이」의 복수형이며, 루바이는 페르시아말로 사항 시라는 뜻이다. 루바이는 민중이 애송하는 민요의 형식이며, 네 개의 줄 모두 마지막부분은 운이 일치하게 돼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마르 카이얌이 지은『루바이야트』는 모두 세 번째 줄은 운을 맞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24번째의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h, make the most lf what we yet may spend, Before we too into the Dust descend; Dust into Dust, and under Dust, to lie,
Sans Wine, sans Song, sans Singer, and-sans End!
아, 이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쓰자꾸나,
우리 모두 언젠가는 한줌 흙이 되어질 몸,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 쉬니,
거긴 술도 노래도 없고 한없이 넓은 곳, (이상옥 역)
여기서 보듯이 영문 시에는 첫째·둘째, 그리고 마지막 줄의 운이 같은「엔드」라는 음으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이교수의 번역시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 말이 그렇게 하기가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마르 카이얌의 시는 쾌락주의를 고취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나는 쾌락주의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의 시에 끌리는 것은 종교적 혹은 철학적인 함축을 엿보게 하는 인생관조의 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도 시의리듬과 운율의 아름다움이내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것을 번역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책을 준 사람은 말했지만, 그 만큼 정열과 성의를 기울였기에 이처럼 훌륭한 작품이 생겨난 것이다. 피츠 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카이얌의『루바이야트』는 역시 번역시라기보다는 창작 시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는 느낌이다. 나는 원문에서 직접 번역했다는 이와 나미문고의『루바이야트』에서는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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