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무원노조 입법 보류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가 공무원노조법의 입법을 무기한 보류함에 따라 4년여 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공무원노조 설립 문제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초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공무원노조법을 연내에 입법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를 강하게 요구하는 데다 비록 법에 정한 단체는 아니지만(법외단체) 공무원노조가 출범한 이상 차제에 법의 테두리 내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힘을 얻은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난색을 표했던 공무원노조라는 명칭과 공무원노조의 상급단체 가입도 허용했다. 중앙인사위원회 등 일부 정부 부처가 우려할 정도의 전향적인 내용이었다.

노민기 노동부 노사정책국장도 지난 6월 이 법을 입법예고하면서 "국민이 어떻게 볼지 걱정"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공무원 단체들이 크게 토를 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암초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공노련)은 정부 안에 찬성했지만 공노련과 함께 공무원노조의 양대 축인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전공노를 설득했지만 전공노는 연가투쟁과 쟁의행위 찬반투표로 맞섰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안은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때 효력이 있는 것인데 당사자들이 거부하니 어떻게 하겠나"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국민 여론이 나빠질 것을 예상하면서까지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는데 이를 거부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공노가 계속 법외단체로 남겠다고 고집하면 굳이 여론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입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노동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전공노가 오판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8만여명인 노조원이 시간이 흐를수록 불어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정부가 결국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이 요구하는 단체행동권을 줄 경우 국가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ILO도 공무원들에게 단체교섭권을 주라고 권할 뿐 단체행동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정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입법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공무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를 야당이 이슈화할 것이고, 이 경우 국민 여론이 악화돼 총선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정부가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펄쩍 뛴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무원노조법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려는 게 아니다"면서 "전공노의 요구가 아무리 강해도 공무원노조법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공노 관계자는 "우리는 노동부와 언제든지 대화할 의사가 있다"며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정부는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전공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업권 등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무리한 입법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