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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한국도자기 - 은나노 업그레이드 '글로벌식탁'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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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월 5만여개의 그릇을 생산하던 4개의 가마는 싸늘히 식어 있었다. 3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일손을 놓았다. 회계장부에는 받지 못한 외상값이 대추나무에 연걸리듯 걸려 있었는데 회사 빚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은 59년 대학졸업 직후 선친인 김종호 창업회장(1989년 작고)의 부름을 받아 회사일을 보기로 했지만 회사 경영사정은 말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회상했다.김 회장은 앞뒤를 잴 겨를이 없었다. 바로 현장에 뛰어들어 새끼를 꼬아 그릇을 묶는 일부터 재래식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2세 경영자가 팔을 걷자 직원들은 곧 그를 따랐다. 밤을 낮삼아 일했다. 그러나 번 돈으로 사채 갚기도 빠듯했다.

당시 그는 빚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릴 때마다 "빚을 덜어주시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김 회장(사진)은 "이래선 아무것도 안된다"며 승부수를 뒀다. 영국에서 도자기 디자인을 들여와 그릇의 외관을 세련되게 꾸몄다. 도자기업계 최초로 TV광고도 했다. 그게 6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전국 텔레비전 보급대수는 22만대에 불과했으나 광고는 대성공이었다. 3년쯤 지나자 입소문이 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도매상들이 물건을 달라고 회사앞에 줄을 섰다. 이제 남은 과제는 품질. 71년 호주 시드니에 산업시찰을 간 김 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국내의 질그릇 값은 1~2달러에도 못미치는데 20달러짜리 도자기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본차이나였다. 본차이나 개발 방법을 찾던 그가 한번은 청와대에 불려갔다.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서 쓰는 식기는 모두 일제인데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는 없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세계적 도자기업체인 영국의 로열 덜튼 그룹의 기술 자문을 받아 본차이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애써 만든 그릇을 깨고 또 깨기를 반복하며 개발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에 본차이나 디너 세트와 커피세트 3벌씩을 청와대에 보낼 수 있었다. 이 본차이나가 시장에 나올 무렵 오일 쇼크가 터졌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경쟁업체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본차이나 판매로 힘을 얻은 한국도자기는 이틈에 도자기업체 정상자리에 올랐다. 그때 빚을 모두 갚았고 지금까지 한 푼의 빚을 얻지 않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금 한국도자기 청주공장은 단일공장으론 세계최대 규모다. 생산설비도 현대화됐다. 블루마린, 레녹스 등 세계의 유명 도자기 브랜드들도 한국도자기에 제품 주문을 하고 있다.

올해 달러값이 떨어져 수익성이 나빠지자 수출 가격을 20% 인상했지만 바이어들은 여전히 한국도자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자기는 세계 56개국으로 제품을 수출한다. 3000여 종의 제품을 매달 200만개씩 생산한다.이중 20%가 해외로 나간다. 2004년 김 회장은 경영권을 장남 김영신 사장에게 넘기며 "50년 동안 국내 1등 기업을 만들었으니 세계 1등 자리에 올려놓는 것은 너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최근의 웰빙 트렌드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2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2004년 은나노 항균 도자기를 시장에 내놨고 2003년 선보인 '프라우나'는 도자기의 명품제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김 사장은 "내년에는 세계적인 주얼리 회사와 디자인 제휴를 해 '보석같은 도자기'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김 회장은 82년 사원 연수원으로 사용하려 사들인 수안보파크호텔을 돌보는 일에 빠져있다. 주로 임직원의 교육과 효도관광 장소로 활용되던 이 호텔은 20여년간 적자를 냈다. 김 회장은 올해 이 호텔의 개념을 확 바꿨다. 나이트클럽과 노래방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친절교육부터 시켰다. 또 전망좋은 커피숍을 식당으로 바꾸고 메뉴를 자연식 웰빙식단으로 짰다. '청정호텔'로 거듭난 이 호텔은 지난 6월 흑자로 돌아섰다.

글=임장혁 기자<jhi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김동수 회장 무해고 경영

한국도자기는 정년퇴직이나 스스로 직장을 떠나지 않으면 좀처럼 감원을 하지 않는다. 매출이 크게 떨어졌던 외환위기때도 해고를 안했다. 98년 870여명이던 직원수는 현재 790명까지 줄어지만 이는 정년 퇴직자한 사람보다 신규채용을 덜한 결과다. 전직원 평균 연령은 43세. 지난해 제조업 종사자 평균 연령이 37.5세보다 훨씬 높다. "기업은 경영자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익이 좀 줄더라도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경영지론이다. 김 회장은 2004년 경영권을 김영신 사장에게 넘겨줄 때도 '정리해고는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김 회장이 무해고 원칙을 평생의 신념으로 세운 것은 1969년. 그해 봄 어느날 청주공장의 도자기 가마 위에 불이 붙었다. 점도가 높은 벙커C유를 연료로 쓰던 시절이었다. 50℃ 전후에서 최적 효율을 내는 벙커C유를 데우기 위해 기름이 가득찬 드럼통을 가마 위에 얹어 놓은 상태여서 불이 옮겨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상황이었다.

직원들은 너도나도 가마위로 뛰어올라 드럼통을 끌어 내리려 애를 썼다. 김 회장이 아무리 뜯어말려도 직원들은 말은 듣지 않았다. 김 회장이 도자기 원료인 백토를 날라 뿌리면서 불길을 겨우 잡아 큰 인명사고는 나지 않았다. 당시 직원들은 "값 비싼 백토가 아까워 손을 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김 회장은 속으로 울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국도자기에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한국도자기에는 노조가 없다. 71년 설립된 노사협의회가 노조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회사는 93년 공장 인근에 '성종 어린이 집'을 지어 임직원의 미취학 자녀의 육아 및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명절에는 일정액의 '효도비'를 지급하고 5월에는 임직원 부모를 수안보파크호텔로 초청한다. 김무성 영업담당 상무는 "청주 공장은 부모와 자식이 대를 이어 다닐 만큼 근로 분위기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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