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문제엔 이견 여전/베이커 미 국무 중동순방 중간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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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점령지」「생존권」 절충시도/아랍선 유엔평화회의 지지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아랍 8개국과 중동 평화안의 골자를 합의한 뒤 가장 큰 숙제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의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있다.
미·아랍 외무장관회담은 예상했던대로 부시 대통령이 제시했던 중동 평화 4개원칙을 수용해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목소리가 걸프전 이전에 비해 훨씬 커지게 되었다.
특히 이 지역 안보를 위해 미 해군의 걸프만 주둔을 항구화하고 미·아랍군간의 합동군사훈련을 정례화시킴으로써 이 지역은 확실하게 미국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예민한 영향을 미칠 미군의 사실상 주둔까지 허용하면서 아랍국가들이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은 항목이 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등 점령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이커장관은 중동으로 출발하기 앞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대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등 점령지를 내놓게 한다는 복안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개별 아랍국가와 이스라엘간의 대화를 주선하며 동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교섭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랍 외무장관들과 회담해본 결과 이 문제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입장이 완강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아랍국가들은 점령지 문제해결은 유엔주도하의 중동 평화회의를 개최,거기서 해결하자는 과거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싸울 때는 유엔의 결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더니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는 왜 유엔 결의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요구에만 맞추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커를 맞고 있는 이스라엘 역시 미국의 이같은 중재를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
개별 아랍국가와 교섭을 통해 관계를 정상화시켜 나가되 점령지는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문제를 들고 나오는 미국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특히 베이커가 이스라엘에 체제하는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중에도 팔레스타인 대표를 따로 만나는데 대해 불만이 크다.
결국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대표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을 연출하자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커로서는 다자회의를 주장하는 아랍국가와 점령지를 내놓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사이에서 해결점을 찾지않으면 안된다.
베이커는 아랍 외무장관들에게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4개원칙은 포괄적으로 해결되어야지 따로 따로 선별적으로 해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즉 아랍국가들이 부시가 제시한 4개항중 자신들의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군사협력,핵·화학무기확산 금지,지역내 국가간의 경제협력 등 3개항은 받고 이스라엘과의 관계정상화는 받지않는 식의 해결은 미국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괄적 해결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아랍 국가들에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밀어붙여 보자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반응이 과히 부정적은 아니라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유엔 주도하의 다자회의에 대해서도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유연한 입장을 아랍국가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우디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만 해결한다면 국교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입장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강경파로 알려진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는 골란고원은 앞으로도 이스라엘의 영토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인정하기 전이라도 이 지역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작은 조치들을 취하겠다고 밝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양쪽이 상호신뢰를 쌓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때 긍정적인 결과가 기대된다』면서 유럽에서 냉전이 종식될 때 같은 길을 걸었음을 지적하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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