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퇴임 뒤 국회의장 ? 부산시장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右)과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서울 로이터=뉴시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생이다. 올해 환갑이고, 대통령을 그만두는 2008년 2월이면 만 62세로 역대 가장 젊은 전직 대통령이 된다. 그래서일까. 청와대를 중심으로 벌써 노 대통령의 퇴임 후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을 고향(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짓기로 했으며 내년 1월 착공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대통령 은퇴 문화에 대한 외국 사례를 모아 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거취와 관련해 정치권의 관심은 다른 쪽에 있다. 현실정치 참여 여부다.

특히 정계개편을 놓고 논란에 휩싸인 열린우리당 내에선 노 대통령이 퇴임 후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소문의 진원지는 노 대통령 본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제헌절(7월 17일)에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5부 요인 만찬 때 김원기 국회의장과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노 대통령=의장 공관이 청와대 관저보다 큰 것 같다. 나도 나중에 (국회의장에) 도전해 봐야겠다. (웃음)

▶김 의장=선수(選手)가 모자라지 않느냐.

▶노 대통령=나도 재선이다. 세 번만 더하면 5선이 된다.

당시 청와대 측은 "농담으로 한 얘기"라고 해명했지만 한나라당은 공식회의에서 이를 거론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문제는 이 발언 뒤 소문이 버전을 달리하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올 초 노 대통령이 한 지인을 만나 "퇴임 후 부산시장에나 출마해 볼까"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퇴임한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든, 지방선거든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미국에서도 전례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20세기 들어 끊겼다.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에 "한마디로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부인했다. 이 실장은 "농담으로 한 적은 있지만 대통령의 우스갯소리까지 기사화가 되느냐"고 일축했다.

대신 청와대는 퇴임 대통령 문화 만들기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여론화에도 나서는 움직임이다. 이 실장은 "은퇴 문화를 새롭게 모색한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며 "정치 일선에 나서는 건 맞지 않지만 재임 기간의 경험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저술.강연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계든 정치계든 우리 사회가 넓은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 교수는 "퇴임 대통령 문화 만들기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재임 중 실패했다는 혹평을 들은 카터 전 대통령이 해비탯(집 짓기) 운동 등으로 퇴임 후 존경을 받는 게 좋은 예"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하지만 국가원수를 지낸 대통령이 갈등과 논란, 당파적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회의원 등의 신분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박승희 기자

◆ 퇴임 후 공직 출마한 역대 미국 대통령=8대인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은 퇴임 후 하원의원을 지냈다. 17대인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퇴임 직후 상원의원 선거와 하원의원 선거에 각각 출마해 낙선한 뒤 1874년 다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10대 대통령인 존 타일러는 퇴임 후 남북전쟁의 와중에 남부동맹(링컨이 대통령이 된 뒤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주들이 만든 국가)의 하원의장에 선출됐으나 임기 개시 전 사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