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물길」 청와대로 돌리기/평민 보라매집회 폭로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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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공 최대약점… 인적 증거 있다”/야/“물증 없는 선전·유언비어” 반박/여
9일 평민당의 보라매 수서규탄대회에서 김대중 총재가 새로운 청와대 관련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수서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재부상할 것 같다.
김총재는 이날 한보 정태수 회장이 구속되기전 호텔신라에서 검찰의 감시를 받는 과정에서 청와대 고위인사와 만나 ▲청와대 관련은 장병조 비서관(현재 구속중) 빼고는 일체 말하지 말 것 ▲여야정치인중 돈을 준 사람은 우리가 문제삼는 사람만 검찰에서 진술할 것 ▲이 대가로 한보기업과 임직원은 살려준다는 합의를 했다고 폭로했다. 김총재는 특히 노대통령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이는 청와대가 수서사건에 깊숙히 개입돼 있고 사건 자체를 은폐·조작했다는 것으로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6공정권을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총재는 이 폭로내용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인적 증거」가 있다고 밝히고 만약 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이 발동되고 특검제가 채택되면 증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날 연설에서 김총재는 수서사건을 워터게이트사건에 비유하면서 노대통령과 TV 공개토론을 제의하는 등 강도높은 공격을 퍼부어 평민당의 수서공세가 상당히 치열할 것을 예고했다.
김총재는 현재의 정치가 정치권의 손에서 떠나 공안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화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한편 정치권의 불안책임을 모두 공안세력의 강성통치의 잘못으로 전가시켰다.
○…평민당이 수서규탄을 내걸고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지자제 의회선거에서 수서문제를 최대한 쟁점화시켜 6공정권의 최대 약점을 아프게 찌르는 동시에 그 반사이익으로 지자제선거에서 최대한 당세확장을 꾀해보자는 의도다.
이는 지자제의회선거→총선→지자제단체장선거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일정에서 단계적 당세확장을 이룬 후 대망의 93년 대권고지에 오르고자 하는 김총재의 대권구도에서 출발한다.
김총재는 7일 전국지구당위원장 회의에서 『기초·광역의회선거에서 성공하면 92년 총선과 지자제 단체장 선거를 보다 쉽게 치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선거는 과거의 대통령선거 양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며 이같은 정치구상을 밝혔다.
김총재는 또 『이번 지자제선거의 최대 이슈는 수서문제와 물가문제』라고 밝혀 수서규탄 집회를 부각시킬 의도를 분명히 했다.
때문에 평민당은 중앙선관위의 전국 순회집회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에도 불구,9일 보라매집회후 14일 수원·성남·안양시 수서규탄대회를 시작으로 3월말까지 김총재가 직접 참여하는 30여개 시단위 전국순회 집회를 강행키로 했다.
바로 전국에 수서바람을 일으켜 정부·여당을 공격,평민당이 지원하는 후보자를 대거 지방의회에 진출시킨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첫날 보라매집회에서 청와대를 겨냥한 강공을 취함으로써 앞으로의 수서규탄대회 분위기를 고양시킬 생각이다.
○…평민당은 당초 지자제 분리선거를 막기 위한 고리로 수서규탄대회를 계획했다가 중앙선관위가 선거관계 발언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자 집회를 순수한 수서규탄 성격으로 전환했다.
김대중 총재도 집회연설을 통해 선거관련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수서관계 내용으로만 일관했는데 이는 쓸데없는 부작용을 일으키면 순회집회를 계속할 수 없고 여권에 정치적 역공의 기회만 줄 뿐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평민당은 이번 보라매대회가 선거법에 저촉된 불법집회라는 중앙선관위나 정부·여당의 지적과 정치적 역공을 당하지 않기위해 수서비리 진상폭로 및 규탄에 초점을 맞추어 사전준비.
때문에 대회장에 설치한 현수막과 어깨띠에 새긴 구호내용을 「수서비리 진상밝혀 야합정권 규탄하자」「국민기만 검찰수사 국정조사 실시하라」「공안통치 포기하고 정치파괴 중단하라」 등으로 선거구호는 일체 넣지 않았다.
당 사무처는 대회홍보를 위해 봉고 6대를 동원,6일부터 9일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했고 당조직을 통해 가능한 많은 청중을 동원토록 지시.
현장에서 혹시 있을 수 있는 폭력사태 및 운동권 학생들의 기습시위로 인한 질서파괴를 방지키 위해 청년당원 5백명을 질서요원으로 배치했고 규탄대회 이외에 당보배포·가투 등은 일체 않기로 했다.
○…민자당은 9일 보라매집회에서 평민당이 새로운 사실이라고 폭로한 내용들이 사실을 뒷받침 할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전혀 없고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한 일종의 「과대선전극」에 불과한 것이라고 혹평하면서 정부측이 지난번 이미 부인한 바 있는 정태수 한보회장과의 사전 밀약설을 평민당이 상상력으로 역조작 했다고 비난.
민자당은 당초 위법시비가 일고 있는 평민당의 전국순회집회에 대해서는 논평이나 비난·반박성명 등 조차도 일체 발표하지 않는 등 맞대응을 않기로 했었으나 평민당이 주장하는 사전밀약설등에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잠재적 폭발성을 지니고 있는 「수서탄」에 다시 불을 댕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즉각 반박논평을 내는등 부산.
그러나 보라매집회 이후 평민당이 계획하고 있는 전국순회집회에 대한 위법공방은 민자당이 일체 개입하지 않고 중앙선관위 대 평민당,또는 정부 대 평민당의 싸움으로 맡겨둠으로써 여당을 끌고 들어가려는 평민당의 물귀신작전에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방어전략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초의회선거에 정당이 개입하는데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평민당이 집회를 계속 강행할 경우 국민적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민자당이 구태여 끼어들어 비난의 초점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규진·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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