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性 못 깨치고 죽어서야 …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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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성(自性)을 못 깨치고 죽으면 죽음이다. 그런 생각에 통곡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공부의 진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죽을 사람이니 얼굴을 씻고 말고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방은 냉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로 불은 조금만 땠습니다. 더우면 게으른 생각을 내기 때문입니다."

조계종 종정인 법전(78.사진) 스님이 자기 다짐을 했던 대목이다. 목숨을 건 참선 공부에서 구도자의 면모가 여실히 확인된다.

지난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법전 스님의 법문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조계종출판사)가 출간됐다. 1996년부터 올 여름까지 하안거.동안거 기간 중 설파한 90여편의 법문을 시자(侍者) 원철 스님이 묶었다.

전남 함평 태생으로 고(故) 성철 스님을 은법사(恩法師.법스승)로 모셨던 법전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禪僧) 가운데 한명이다. 이번 법문집 앞부분에는 스님의 수행기가 소개된다.

평생을 수행에 전념한 까닭에 그의 성장 과정 등에 정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출가 동기가 거창하지 않았다는 점. 속가에 있으면 단명할 팔자라는 어느 주역가의 말을 듣고 부모님이 열네살의 그를 백양사 청류암에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그는 '독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는 분심(忿心)이 있어야 한다. 산을 뽑아버릴 듯한 분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법문은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잡다한 설명이 없이 핵심을 찌르는 힘이 있다. "미혹한 중생이 산과 물을 구별짓고 부처와 중생을 차별짓고 있을 뿐입니다"는 지적이 산산이 갈라진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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