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등 주요국 대사 이동 배경|"실무형 중용"…현안 해결 중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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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노태우 대통령은 지난달 말 우리 외교 망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미·주일·주영·주유엔 대사 등을 새로 임명했다. 현홍주(미)·오재희(일)·이홍구(영)·노창희(유엔)씨가 그들. 집권 후반기를 맞아 노 대통령의 친정 체제 강화라는 평가였다.
6공 탄생의 산고를 함께 겪었거나 6공 출범 초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확보를 위해 초석을 함께 놓았던 사람들을 대거 등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 상대적으로 젊다(?)는 것이다.
장·차관 또는 그에 상당하는 직위를 가졌던 사람들이므로 말 그대로 젊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전임 박동진·이원경 대사와 비교할 때 10여 년씩 연하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 네 곳 재외공관을 흔히 기축공관이라고 한다. 우리 외교가 이들 나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왜 그의 집권 후반기를 맞아 이처럼 중요한 공관에 젊은 대사를 임명했을까. 자신들의 이해에 부합된다는 전제가 붙지만 세계의 질서를 수호해 온 경찰국가 미국과 이미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
이들과 우리의 관계는 지금까지 보통의 국가와 국가사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와 그 수많은 원조를 생각할 때 미국은 우리에게 단순히 초강대국 일수만은 없다.
더욱이 주한미군은 한미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얘기해 준다.
쉽게 말해 통치권자의 입장에서 한미관계는 적당히 응석도 부릴 수 있었다. 그만큼 가깝다면 가깝고, 왜곡됐다면 왜곡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한미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80년대 초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 이른바 국제사회의「동반자 관계」라는 새로운 표현이 양국관계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최근 양국의 연간 무역 고는 4백억 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우리는 계산상의 논란은 있지만 수십 억 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
미국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못 이겨 무역 상대국에 대한 통상 개방압력을 가중시키고 있고, 우리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슈퍼 301조에 의한 덤핑 판정도 있었고 지적소유권 보호, 자본시장개방, 농수산물 수입자유화 등 한미간의 통상현안은 한 둘이 아니다.
한미간에는 또 최근 방위 비 분담에 관한 특별협정을 맺었다. 주한미군의 경비 일부를 우리가 부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아직 액수야 크다 할 수는 없지만(올해 5천3백만 달러)문제는 앞으로 주한미군의 유지비 가운데 상당부분을 우리가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 당국자는『이제 우리의 안보에 관한 한 주한미군의 존재는 선택의 문제가 됐다.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과거의 경우 억지와 하소연으로 사정했지만 이제는 돈을 벌 것인가, 말 것 인가로 환치됐다』고 설명했다.
냉전이 물러가고 신 데탕트 시대가 전개되면서 북방외교의 문이 열린 득도 있지만 이렇게
한쪽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미관계의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쇠락기를 맞은 노 대국이 추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총론과 도덕적 호소로만 미국을 상대할 수 없게 됐다.
『구체적이고 아주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까지도 이해를 따지고 주어야 할 것과 받을 것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외교의 현장을 뛰는 외교관들이 한미관계에 대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한일 관계도 같은 의미에서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36년의 불행한 과거는 지금까지 양국관계를 지배해 왔지만 이젠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월초 노 대통령과 가이후 일본 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를 다짐했다고 지난날이 모두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문제를 공식 논의하고 있고 7·7선언의 정신에 따라 일·북한의 수교 교섭을 전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일제 36년은 양국관계를 규정해 온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65년 양국의 국교 정상화 이후 본격화하기 시작한 우리의 경제 개발에 일본이 기여한 공로는 사실 적지 않았다.
대일 청구권 자금 및 유상원조 등은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 기간산업 건설에 따른 투자자금과 기술 부족에 허덕이던 우리의 입장에서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세계굴지의 제철소로 부상한 포항제철의 경우도 초기에는 일본의 기술과 자금에 의한 것이며 기타 모든 산업에서도 일본의 도움은 컸다고 해야 할 것이다.
5공 출범 초 40억 달러의 경협을 포함하면 두 번의 군사정권이 입은 은혜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최근 들어「부머랭 효과」를 내세워 우 리에 대한 도움보다는 견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기술 이전을 꺼리고 만성적인 무역적자 해소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 일본회교의 관건입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에서 국제정치의 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나 후원이 필요합니다』
이제 일본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외교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미·한일관계는 감정적·총론 적 단계에서 이성적 각론 적 관계로 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같은 시대 변화에 맞는 인물들이 이들과 우리의 관계를 끌어 나가야 합니다. 과거처럼 거물급이 앉아 양국관계가 총론 적으로 우의에 기반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실익을 챙길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각론적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실무형의 인사여야 한다고 나 할까요』
한 당국자가 현홍주·오재희 대사 등의 임명을 두고 내린 해석이다.
현대사는 이른바 KS 마크로 검사 출신이다. 미 콜롬비아 대학에서 수학하며 닦은 영어실력으로 맡은 직책에 상관없이 6공 정부의 대미홍보 창구를 담당해 왔었다.
노 대통령의 신임이 높아『내각제라면 외무장관 감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주 유엔대사로 부임했을 때부터 그는 차기 주미 대사 감으로 치부돼 왔을 정도였다.
오 대사의 경우 장관을 지내지 않은 커리어 외교관으로는 최초의 주일대사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김동조 대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엄밀하게 말해 외무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경제관료로 출발, 후에 정무국장으로 외무부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오 대사는 노재봉 총리와 처남 매부의 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외무장관 감으로 개각 때마다 거론됐던 외무부의 기대주였다.
「오 검사」로 통할 정도로 논리적이고 따지는 것이 능해 정치학도 답지 않고 법률가 같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이밖에 올해 우리 외교의 최대 목표 가운데 하나인 유엔 가입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의전수석으로 3년을 같이 보낸 노창희 대사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외무부에서도 알아주는 탁월한 영어실력의 소유자며 매사를 차분하게 처리한다는 평이다.
이홍구 주영 대사는 6공 초 서울대 교수에서 통일원 장관으로 부임, 대통령의 정치담당특보로 변신하면서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한다.
물론 그는「조용한데 가서 쉬라」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일단 관저가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 있는 제네바 대사로 내정됐으나 뒤늦게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으로 제네바가 그리 편하게 쉴 곳은 못된다는 사실을 알고 영국으로 임지가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영국이 걸프전의 전비분담을 요구해 오고 있고 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을 앞두고 유럽의 선임공관에 부임하는 그의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외교는 사람이 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와의 기본관계는 대부분 서로가 갖고 있는 힘의 총화가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와의 사이가 일방적인 관계에서 이해 균형을 찾아야 하는 쪽으로의 변화 추세에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인물이 양자관계를 관리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사는 우리 외교의 변화추세를 잘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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