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키즈] 얼굴도 못본 손자들을 위한 이문구선생의 유작 동시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올 초 타계한 소설가 이문구씨는 1988년에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를 낸 적이 있다.

"이마에 땀방울/송알송알/손에는 땟국이/반질반질/…/멍멍이가 보고/엉아야 하겠네/까마귀가 보고/아찌야 하겠네"('개구쟁이 산복이')라고 읊었던 산복이는 다름 아닌 아들 이산복(26)씨다.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아버지의 사랑을 진솔하게 담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남다른 자식 사랑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 미혼인 아들과 딸 이자숙(25)씨가 결혼해 손자.손녀를 낳으면 들려주고 싶다며 투병 중이던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66편의 동시를 썼다.

그래서 소설가가 남긴 유작 원고가 동시가 되었다. 얼굴도 못 볼 자손들을 생각해 시를 썼다는 사연만으로도 눈물겹지 않은가. 시인 신경림씨는 "직접 기를 수 없는 손자.손녀인 만큼 이 일, 이 얘기만은 꼭 들려주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간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의 시는 평화롭다. "큰 바람이 일고 싶은지/저 먼산 기슭에/자욱한 는개같이/바람꽃이 피었다"('바람꽃')고 하는가 하면, "아무도 오지 않고/아무도 소식 없는 날만./온다는 말도 없이/함박눈이 오네"('함박눈')라고 읊고 있다. 나무와 새들, 벌레, 들꽃들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하면 알려줄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 우리의 잊혀가는 풍습과 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맷돌을 두고 "지금은 민속 공예품의 하나, 그래서 이 큰 음식점의 마당에 박혀/드나드는 손님들 섬돌 노릇으로/닳고 닳아서 납작해지고…"라고 표현했다.

손자 뒷바라지에 힘겨운 줄 모르는 할머니에 대해서는 "친손자 외손자/ 신발 위에 신발 벗고 모여/명일날도/허리를 못 펴는/고사리 할매"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그는 이땅의 손자.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로 담았는지도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