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2006문화계] 제 모습 찾아 시민 품으로 … 복원·개방 잇따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광화문 복원 공사 시작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의 복원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멀쩡한 광화문을 허물고 굳이 새 문을 세워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과거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경복궁 중심축에서 동쪽으로 5.6도 틀어졌고, 자리 또한 원래보다 북쪽으로 14.5m, 동쪽으로 10m 옮겨졌던 광화문을 조선 후기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20세기 한국사의 뒤틀린 얼굴을 반듯하게 펴는 것과 다름없다.

시민들은 북한산 숙정문(북대문) 일대의 등산로 개방을 환영했다. 4월 이후 12월 초까지 2만여 명이 다녀갔다. 6월 중순 27년 만에 자유관람(매주 목요일)이 허용된 창덕궁에도 2만 명(목요일 관람객)이 넘는 발길이 몰렸다. 고종 황제가 외교사절을 불러 연회를 열었던 덕수궁 정관헌도 8월(매주 토요일)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독일서 돌아온 겸재 정선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 겸재 정선의 '국보급 작품' 21점이 담긴 화첩이 독일의 성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한국의 왜관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에 반환된 사실이 지난달 말 확인됐다. 양국 수도원 사이에 쌓인 신뢰 덕분이다. 소유권은 독일 측이 간직하되 연구.전시는 한국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영구임대'가 주목을 받았다. 겸재의 '환국'으로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인 후지쓰카 아키나오가 추사 관련 유물 1만여 점을 2, 8월 두 차례에 걸쳐 과천시에 기증한 것도 빅뉴스로 꼽힌다. 18~19세기 동아시아 최고 학자였던 추사의 면모를 새롭게 밝혀줄 문화재다. 추사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전시회도 잇따라 열려 올 한해 '추사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일본 도쿄대는 6월 초 서울대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93년 만에 돌려주기도 했다.

북한 국보 왕건상 서울 나들이

"통일될 때까지 북한의 문화재를 이처럼 다양하게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국립중앙박물관 조현종 고고부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한국에 처음 전시된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 90점(6월 12일~8월 16일 국립중앙박물관, 8월 29일~10월 26일 국립대구박물관)에 각별한 관심이 몰렸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등신상(等身像)에 시선이 집중됐다. 서울.대구 합쳐 총 13만 명이 관람했다.

남북한 학자 18명이 4월 19일부터 14일간 고구려 고분벽화 6기를 공동 조사한 것도 기억할 만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 벽화에 대한 첫 과학적 조사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남북 문화재 교류는 급속히 냉각됐다. 7~8월 예정됐던 개성 만월대에 대한 공동조사가 무산됐다. 국정감사에서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논란이 됐다.

순종 타던 차, 문화재 지정

색이 바래고, 이끼가 껴야 문화재가 아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것 모두 문화재가 될 수 있다. 지금 보존 하지 않으면, 후대까지 남아있을 것으로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에는 20세기의 유물, 즉 근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근대 문화재 도입 5년 만에 등록 건수가 300건을 돌파했다. 보기에도 정겨운 시골의 돌담길,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간이역이 문화재로 격상됐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탔던 어차(御車.캐딜락 리무진)와 근대기(1902~45년)에 제작된 국가표준 도량형기도 문화재 대열에 합류했다. 비무장지대에 50년간 방치됐던 장단역 기관차는 보존처리를 위해 지난달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200년 만에 발견된 하피첩

그것은 정말 뜻밖의 '사건'이었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적어보낸 '하피첩'석 점이 3월 말 약 200년 만에 발견됐다. 다산의 부인이 시집올 때 가져온 붉은 치마에 글을 남겨 더욱 화제가 됐다.

올해 새로 발굴한 유적으로는 서울 풍납토성의 도로유적이 손에 꼽힌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의 도로 유적으로, 서기 200년대 백제 시대 초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둥성 펑라이 해저에서 고려선박 두 척을 발굴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한국 수중고고학의 첫 장을 열었던 신안 해저유물 발굴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도 열렸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