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쉽게 무너진 이라크군/국제(지난주의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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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첨단장비 전격전에 포로만 15만명/궁지몰린 후세인 해외망명 준비설
7개월에 걸친 장기간의 걸프위기가 지난달 23일 정오(미 동부시간·한국시간 24일 오전2시)를 기점으로 급변,4일간의 전격 지상전으로 단숨에 결말이 났다.
미국주도 다국적군이 1백시간 전격작전을 통해 1백만군대와 4천5백대의 탱크를 바탕으로 전세계와 대결하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일거에 굴복시켰다.
지난달 23일 정오는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 대통령에게 보낸 최후통첩 시한이었다.
세계는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손에 땀을 쥐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 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다국적군은 이미 전투 태세를 완비,사전통보된 지상전 공격개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유엔안보리는 지상전 개시가 임박한 상태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후세인 대통령도 혁명평의회를 주재,이라크의 운명을 스스로 논의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백8일,바그다드 공습 49일만에 시작된 지상전 공격은 후세인이 부시가 제시한 시한을 넘김으로써 거의 여유를 주지 않고 시작됐다.
이라크는 시한에 임박해 보론초프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통해 유엔안보리에 무조건 철수를 통보했다.
이라크의 철수통보가 유엔안보리에서 시한전에 이루어졌는지,그 후에 이루어졌는지는 미확인 상태다.
그러나 부시 미대통령은 『이라크가 시한을 넘겼다』는 이유 하나로 지상전 공격개시를 명령했고 1백시간이라는 최단시간의 최대 군사작전으로 이라크의 운명은 결정됐다.
슈워츠코프장관이 지휘하는 미군을 비롯,다국적군 주력 부대는 23일 오후 2시 (미동부 시간·한국시간 24일 오전4시) 이라크의 방어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국경을 돌파,이라크 남부 바스라 주변에 포진한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를 바그다드와 분리·고립시켰다. 쿠웨이트 남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을 돌파한 미해병 및 다국적군은 쿠웨이트시로 북진,60만에 이르는 이라크군을 3면 포위했다.
특히 다국적군 주력 부대가 이라크 영내 깊숙히 돌진,이라크군의 지휘 및 보급을 차단한 것은 인천상륙 작전에 버금가는 「사막의 상륙작전」이었다.
쿠웨이트시는 27일 이미 해방됐다. 이라크군은 쿠웨이트 북부로 패주하고 다국적군에 잡힌 포로가 15만명을 넘어섰다.
이라크군은 다국적군에 대포 하나 제대로 쏘지 못하고 무참히 쓰러졌으며 후세인이 믿었던 공화국 수비대는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별다른 저항없이 전투 의지를 상실했다.
걸프전쟁은 이라크군의 무력한 대응으로 손쉽게 끝났으며 후세인 대통령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전 공격 4일째인 27일(한국시간 28일) 후세인은 유엔안보리를 통해 미국의 철군조건 무조건 수락의사를 통보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후세인 대통령의 육성방송을 요구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1시간여후 부시의 요구대로 『이라크군의 지난해 8월2일 이전 주둔 지역으로 철수』를 명령하고 『쿠웨이트는 이제 이라크 영토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후세인의 라디오 방송후 부시 미대통령도 27일 자정(미동부 시간·한국시간 28일 오후2시) 정전을 선언하고 10여만 명의 이라크측 희생자를 낸 첨단 병기의 실험장 걸프전쟁은 총성이 그쳤다.
걸프전쟁은 이제 휴전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은 바스라지역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해제하지 않고 최정예 미7군단 병력을 계속 잔류시키고 있다. 이같은 군사력의 이라크영내 잔류는 대 이라크 휴전 협상에 가장 중요한 위협 수단이 되고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후세인의 제거 및 그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후세인은 이미 외국 망명 준비설이 나돌고 있다.
세계 33개국을 향해 이슬람과 아랍,그리고 「알라」를 외치며 대항하던 후세인에게는 2월 마지막주가 이미 예정 했던 그의 운명을 현실로 확인해준 역사적 한 주가 됐다.<진창욱 외신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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