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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네버 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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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공산정권 시절 첩보기관의 비밀자료 공개를 수 주일 앞둔 지난달 15일 이 기관의 문서보관소장 보즈히다르 도이체프(61)가 사무실에서 총탄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당국은 사건 발생 이틀 뒤에야 이를 발표했다. 야당은 과거 치부를 드러낼 비밀자료의 공개를 막기 위해 누군가가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이 나라 첩보기관은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과 78년 런던에서 발생한 방송인 게오르기 마르코프 독극물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2. 루마니아 중부 브라쇼브. 정부 기관인 '공산주의 범죄 조사처'의 마리우스 오프레아 처장은 이달 초 고향인 이곳 거리에서 괴한들로부터 "공산주의 범죄 조사 작업을 계속하면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는 즉시 가족을 독일로 피신시켰다. 과거 루마니아 첩보기관 세큐리타테는 1만1000여 명의 요원과 50만 명의 끄나풀을 이용해 국민 개개인의 동태를 낱낱이 감시했다. 당시 수십만 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됐고 상당수가 비밀리에 처형됐다.

#3. 지난달 23일. 영국에 망명한 뒤 반러시아 활동을 벌이던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첩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런던에서 방사능 물질에 오염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는 FSB의 전신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비밀공작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유럽과 러시아 등 옛 공산권 국가에서 과거 첩보기관의 비밀공작과 범죄행위를 파헤치려는 사람들에게 살해와 위협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 근 20년이 됐지만 첩보기관 출신이 여전히 정.관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 루마니아=공산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철권통치가 무너진 뒤 정보조직과 기관장이 교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첩보요원이 정.재계에 포진해 있다. 세큐리타테 출신인 마리안 우레체는 전력을 숨기고 2001년 새 정보기관을 창설했지만 뒤늦게 과거가 탄로나 물러났다. 모나 무스카 전 문화장관은 공산 시절 외국인 학생의 동태를 보고한 전력이 드러나 집권 자유당에서 탈당했다. 보수당 당수였던 단 보이쿨레스쿠도 비밀요원 경력을 숨겨 오다 올해 초 드러나면서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루마니아 정부는 내년 1월 유럽연합(EU) 가입을 앞두고, 정보기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개혁 법안을 10월 승인했지만 의회는 이를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불가리아=비밀경찰 자료 공개에 가장 소극적이다. 첩보기관의 비밀 파일 수백만 건이 공산정권 붕괴 10년이 넘도록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EU 가입을 위해 의회가 비밀자료를 전면 공개하는 법안을 지난달 초 통과시켜서 앞으로 주요 인사들의 전력이 밝혀지는 등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 러시아=러시아 엘리트연구소의 사회학자 올가 크리시타놉스카야의 연구 결과 정계 지도자와 고위 행정관료 5명 중 4명은 KGB와 그 후신인 FSB 요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KGB 간부와 FSB 국장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 현직에 임명됐다고 BBC가 전했다.

이 가운데 KGB 출신인 세르게이 이바노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푸틴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이다. 세르게이 스테파신 감사원장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상공회의소장은 FSB 국장을 역임했다. 빅토르 이바노프 크렘린(대통령궁) 보좌관, 올레그 사포노프 내무부 제1차관보, 예브게니 슈콜로프 내무부 경제안보국장, 발레리 골루볘프 가스프롬 부회장도 KGB 출신이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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