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덕군자」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2월 20일 자(일부지방 21일자)5면 중앙일보 「시평」란에 실린 김병규 교수의 칼럼을 읽고 이 글을 쓴다.
칼럼의 요지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건전한 정치 풍토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인들만을 매도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대충 이해되지만 글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지는 인식상의 중대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과거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각광을 받았던 도덕군자를『「나물 먹고 물 마시고 말을 베고 누워서 악」을 찾는』 세속적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간주하면서 이들을 『국민 경제의 성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존재』로 사정없이 매도하고 있다. 「분수를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는 의미로 회자되는 이 구절을 무기력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도덕군자를 금욕적이고 비현실적인 인간형으로 보는 것은 도덕군자, 나아가 유교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이 아닐 수 없다.
도덕군자의 본래적 의미는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원칙을 준수하는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지 도덕 자연하면서 현실에서 무기력한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실에서 무기력한 그런 인물을 존경할 정도로 과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무지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았다.
공자도 올바른 원칙이 세워져 있는 나라에서 가난하고 천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반면 올바른 원칙이 세워져 있지 않은 나라에서 부유하고 귀한 것도 또한 부끄러운 일(방유도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책언 치야)이라고 갈파했다. 이 말은 군자의 의미가 의무나 원칙의 준수 여부에 있는 것이지 맹목적인 현실도피나 도외시에 있는 것은 아니란 암시를 준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원칙을 만든 자들, 그래서 더욱 원칙을 지켜야할 자들이 원칙을 파괴한데서 오는 것이지 김 교수의 지적처럼 「위선의 탈을 쓴」 시대착오적인 국민들의 무리한 도덕률 강요와 이에 대한 정치인들의 적응능력 부족에서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김 교수의 더욱 심각한 오류는 이 같은 개념 오해의 차원이 아니라 도덕군자들에 대한 그의 혐오가 역으로 개인의 사리를 위해 사회분위기를 해치는 존재들을 필요악의 차원이 아닌 필요선의 차원으로 보게 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인간의 이기적 본능이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있다 하더라도 국민 정제의 냄새나는 부분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환하게 노출시키기를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희망사항이며, 이것을 실행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결국 경제사회를 경직화시키고 경제발전의 정체를 초래할 것』이란 분석은 생각을 거듭해도 단순하고 천박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특정 사회체제에 대한 호악의 감정을 떠나서 어느 사회체제든 그 사회체제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은 그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자들의 몫이지, 그 사회의 원칙을 파괴하는 자들의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진리 아니겠는가. 오정택<서울 성동구 자양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