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때 어머니 졸라 뜨개질|꽃무늬는 심 박아 입체감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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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1월 주부들 사이에는 한 소문이 나돌았다.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장래의 새아기를 위해 7년전부터 원삼이며 댕기·족두리등 페백의상 일체를 수놓아 만들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그 물건들이 완성되면서 주인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놀라움 반, 부러움 반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이 소문이 11월13일 결혼식에서 마친내 모습을 드려내자 사람들은 「정성」을 웃도는 「빼어난 솜씨」에 다시 한번 찬탄을 금치 못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현대아파트 34동804호에는 화제의 주인공이었던 시어머니 조계미씨(49·문근럭키금성상사부사장부인)가 새아기 박은실씨(26·이대대학원 4학기)와 오순도순 살아가고있다.
언론인이자 문필가로 이름난 청사 조풍연씨(77)의 4남매중 맏딸인 계미씨의 빼어난 자수 솜씨는 가까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방미씨(74)로부터, 멀리는 서씨의 친정어머니이자 그의 외할머니인 전주이씨(작고)로부터 맥을 이어온 것. 그래서 서씨는 자신이 한사코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수틀앞에 앉고만 딸을보고『유전병』이라고 말한다.
다섯살때부터 어머니를 졸라 뜨개질을 배웠던 조씨는 중학시절에 이미 손재봉틀로 스커트를 비롯해 모든 옷을 다 만들어 입고 다닐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 났었다.
빨간실·노란실·파란실·초록실등 갖가지 아름다운 색실로 부책다 남같은 글씨도 만들고 모란꽃도 그리고 봉황도 그리는 서씨를 보며 조씨는 자신에게도 자수를 배워줄것을 간청했지만 서씨는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쉽지만 수를 놓는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우므로 딸에게는 결코 시키지 않겠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조씨가 독자적으로 자수공부에 나선 것은 아들(문찬·27)이 고교 3학년때 대입준비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외아들을 기다리면서 자수를 놓으면 좋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때마침 자수교실이 열리자 그는 서슴없이 등록,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주 수요일이면 자수교실 행을 해오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열성과 이번 외손자 결혼식때 신랑관복의 흉배를 수놓아 선물할 정도로 솜씨가 대단한 서씨의 내림솜씨, 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실력등이 한데 합쳐져 그의 솜씨를 두드러지게 해주고 있다.
동양자수는 ①수틀매기 ②밑그림 그리기 ③재봉틀실로 가강자리 놓기(일명 심박기) ④수놓기 ⑤금사로 가장자리 놓기 ⑥뒷면에 풀칠하기 ⑦김쏘이기 ⑧수틀을 뜯은후 얇은 헝겊이나종이를 대고 다림질하기 ⑨배접하기의 순으로 완성된다. 옷에 직접 수를 놓을때는 반드시 실을 꼬아서 놓아 보푸라기가 일지 않도록 하고, 새나 글씨와는 달리 꽃은 반드시 심을 박은후 수놓아 입체감을 살리는 것이 요령이다.
자수솜씨를 대물림하는 집안답게 수를 보관하는데도 철저해 서씨가 시집올 때 해온 수방석도 지금껏 보존되고 있을 정도. 수가 놓여진 사이 사이마다 한지를 깔고 오동나무 상자에넣어두었다가 장마가 지난후가을날 한차례 거품을 해주는 것이 이 집안의 보관비법이다.
『어머니께서 제가 수를 놓는데 반대하셨지만, 생활속에서 몸소 가르침을 주신겁니다. 강요하지 않은 것이 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신거지요. 수를 통해 제 자신이 안정되고, 남편에게도 신뢰감을 쌓아가는등 이점은 무수히 많지만, 제 어머니가 그랬듯 며느리에게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조씨의 말이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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