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대차 노조, 언제쯤 정신차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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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성 노동운동을 주도해 온 현대자동차 노조가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노조 간부가 창립기념품 납품계약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노조는 새 집행부를 뽑기 위해 조기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현대차 노조의 파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에도 노조 집행부가 비리로 중도 하차했고, 지난해는 채용 장사로 물의를 빚자 노조 간부 윤리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33일간 파업을 벌여 1조5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끼쳤다. 올봄 최고경영진이 검찰에 불려가는 급박한 상황에도 9.1%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배짱 좋은 노조다. 오죽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노조가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현대차 노조는 올해 11차례 벌어진 민주노총의 총파업에도 꼬박꼬박 참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노사관계 로드맵, 비정규직 법안 등 조합원과 관련이 적은 사안을 문제삼은 정치파업이었다. 겉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듯하면서 내부에서는 낯 뜨거운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현대차는 시련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원화 환율 하락과 원자재가.인건비 상승, 세계 자동차시장 침체 등으로 경영환경이 나빠졌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1조2500억원가량으로 2003년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최근에는 원-엔화 환율의 하락으로 해외시장에서 현대차 가격이 일본 차보다 비싼 경우가 생기고 있다. 반면 56년째 무파업을 기록 중인 일본 도요타는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며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현대차 노사가 한마음으로 대처해도 버텨내기 힘겨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현대차의 위기는 우리 경제의 위기이고, 현대차 노조의 문제는 우리 노동운동의 문제다. 노조는 그간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회사도 노조에 끌려다니지 말고, 엄정하게 대응하기를 바란다. 노사 모두 생각을 확 바꾸지 않으면 내년도, 내후년도 희망이 없고 우리 경제의 시름도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