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테니스 페르난데스 운동도 만점…공부도 만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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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계 여자 프로테니스 랭킹 4위인 미국의 메리 조 페르난데스(20)가 학업과 운동을 성공적으로 병행, 미국 스포츠계에서 화제와 함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학업을 팽개친 채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대다수 한국 선수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르난데스는 지난 86년 고교 1년 때 권위 있는 연령별대회인 오렌지볼대회에서 4년 연속우승을 차지하면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당시 미국 테니스계에서는 트레이시 오스틴이나 가브리엘라 사바티니의 경우처럼 페르난데스도 학업을 포기, 곧바로 프로선수로 전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녀의 부모도 딸이 학업보다도 테니스로 대성하기를 바랐을 정도여서 당연히 그같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주위의 이 같은 기대(?)를 단호히 거부, 마이애미 캐럴튼고교에 재학하면서 프로경기에 출전하는 학생선수로서의 1인2역을 감당해 나가기로 했다.
이후 페르난데스는 그랜드슬램대회를 포함, 중요대회에만 출전하는 등 학업을 위해 대회출전 횟수를 줄여 나갔다.
『운동보다 수업 우선으로 스케줄을 짰어요. 또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대회출전 중에도 경기가 없는 날에는 호텔방에서 피타고라스정리(수학)를 복습했고, 친구들이 팩시밀리로 보내준 강의내용을 익혀 좋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바쁜 경기스케줄로 학교당국으로부터 두달 늦게 기말시험을 치르는 배려도 받았다.
고교 3년 동안 그녀는 50만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였고 공부도 거의 전과목에서 A학점을 받는 모범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지난 89년 프랑스오픈대회 출전으로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 대회준결승에서 아란차산체스(스페인)에게 아깝게 패했었다.
페르난데스는 고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프로활동을 개시, 지난해에는 등뼈와 팔목 부상에도 불구, 세계랭킹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랜드슬램 타이틀은 따내지 못했으나 대회 때마다 8강권에는 들어가곤 했다.
지난해 1월 코치인 팀걸릭슨은 페르난데스의 근력강화를 위해 체력훈련을 실시했으며 톱스핀과 서브에 체중을 싣는 방법을 집중 지도했다.
걸릭슨 코치는 스트로크위주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페르난데스의 경기스타일을 네트플레이 중심의 공격형으로 바꿔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지난해 미국오픈대회 준준결승에서 9번 시드의 말리바 프래그니르와 격돌했을 때 서른한차례 네트에 돌진, 승리를 거뒀다.
『네트플레이는 쉽지 않기만 열번 시도해 여섯번 성공하면 이길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힘들고 더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고 그녀는 말한다.
페르난데스는 지난해 9월 동경에서 벌어진 실내대회 준결승에서 말리바 프래그니르를 이겨 세계9위에 올랐고 애미 프래지어와의 결승전에서 근육경련을 극복하고 승리, 첫 프로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상승세를 보여 3주후 독일의 필더슈타트에서 두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녀는 지난해 광고수입으로 1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녀는 체력에 자신이 있으므로 앞으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시범경기를 치르는 등 출전횟수를 늘려 취약점인 실전경험을 익힐 계획이다.
걸릭슨코치는 페르난데스가 지난해 9월 루마니아 출신 이온 티리액과 스폰서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그녀와의 관계가 불확실해졌다. 그러나 그는 피터샘프라스가 중도에 학업을 단념하고 20세 이전에 미국오픈을 제패하는 등 세계정상급에 뛰어오른 것에 비해 페르난데스가 학업 때문에 19세에서야 겨우 본격적인 테니스수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친구들과 점심식사로 프렌치파이를 같이 먹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며 저렴한 음식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등 테니스 못지 않게 친구관계 등 사회생활을 중요시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동급생들의 이름도 모르며 수업에는 거의 출석하지 않는 우리 운동선수의 현실과 페르난데스의 생활모습은 분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71년 도미니카 공화국출신의 아버지 호세와 쿠바태생인 어머니 실비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호세는 미국 증권회사직원으로 지난 60년 쿠바의 하바나를 방문, 실비아를 만났다.
현재 페르난데스 가족은 15년전 이주해 정착한 마이애미 남부에 침실 3개가 딸린 조촐한 콘도에서 살고 있다. <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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