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평민 대역공/「양심선언」회오리… 여야 전면전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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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 거론에 “생떼다”맞상대 피해/청와대/정치판 민주적 싹쓸이론까지 대두/민자당/검찰 수사는 “쿠데타 예비음모”비난/평민당
○…평민당은 16일 오전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한데 이어 오후에 부총재단회의를 열어 당 지도부로 불똥이 튀고 있는 수서사건의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이날 오후 부총재단회의는 정치자금 2억원이 한보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평민당에 제공됐다는 검찰측의 비공식발표에 대한 대책을 마련키 위해 김대중 총재의 긴급지시로 열렸다. 회의가 끝난후 이 돈을 이원배 의원으로부터 건네받았던 권노갑 의원은 해명서를 통해 작년 12월15일 2억원을 1백만원짜리 수표 2백장으로 받은 사실은 시인하고 지난 2월3일 수서사건이 터지고 난후 이의원에게 돌려주기까지의 경위를 해명한뒤 이의원이 지난 12일 밤 10시쯤 작성했다는 「양심선언」을 공개함으로써 반격에 나섰다.
권의원은 『이의원이 검찰수사 결과가 밝혀진뒤 언론에 공개해 달라고 했다』면서 『이래도 청와대가 이 사건의 진원지가 아니라고 하겠느냐』고 양심선언이 사태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
이날 오후 검찰청사로 이의원을 면회갔다온 조승형 의원은 이의원이 양심선언에서 폭로한 청와대 관련부분을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부총재단회의는 처음에 정치자금 2억원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웠으나 이의원의 양심선언이 공개되자 활기를 띠었는데 양심선언 말미에 폭로한 청와대 관련 부분에 무척 고무됐었다는 후문.
게다가 검찰측이 권의원에게 준 2억원을 「뇌물」로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근 부총재는 『정치자금까지 문제삼는다면 야당의 설 땅이 어디 있겠느냐』며 『6공정권이 해도 너무한다』고 푸념했고,유준상 정치연수원장은 『육법전서의 예비 쿠데타 음모』라고 검찰의 정치적 수사태도를 비난했다.
권의원은 2억원 정치자금문제가 터지자 박상천 대변인과 함께 김총재를 따로 만나 해명문제를 협의한후 당사로 돌아와 부총재단회의에 배석,경위설명을 한뒤 기자들과 만나 『이의원으로부터 한보와 수서와의 관계에 대해 듣고 2억원을 돌려주고난 뒤도 김총재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그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김총재가 자신이 보고한 2월15일밤까지 이 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
그러나 2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연말자금으로 뿌리면서 김총재에게 보고치 않았다는 것은 수긍되지 않는다는 당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권의원은 『2억원을 받고 공식적으로 당 금고에 입금시킨뒤 돈을 꺼내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작년 12월15일 이의원으로부터 「아무 조건없는 개끗한 돈이니 수표 그대로 써도 된다」는 말도 있었고 마침 정기국회 마감 이틀전인 12월16일 송년회도 있어서 하룻만에 즉시 연말자금으로 나누어 주었다』고 자기 책임하에 돈을 국회의원·원외지구당위원장·당직자들에게 모두 배분했다고 했다.
권의원은 해명서에서 2억원에 대해 ▲이 돈은 수서주택조합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이 돈을 받을때 한보와 수서주택조합의 관계를 전혀 몰랐으며 ▲이 돈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이 오직 깨끗한 정치자금으로 주고 받았다는 점을 들어 『부정이나 의혹이 추호도 개입되지 않았다』고 주장.
권의원은 이날 오후 검찰로부터 2억원의 정치자금문제와 관련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언론에 공개한 해명서와 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보냈다고 소개.
한편 평민당내에선 검찰이 김태식 의원을 수서사건과 연관시켜 구속한데 대해 『검찰이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고 비아냥.
김봉호 사무총장은 『김의원을 아는 사람은 김의원이 공갈을 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웃을 것』이라며 『검찰이 김총재와 어떻게든 연관시키려고 비서실장인 김의원을 「지목」한 모양이나 이것은 검찰의 분명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측은 구속된 이원배 의원의 양심선언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물귀신작전』이라며 맛상대 자체를 회피.
정해창 비서실장 주재하의 관계수석비서관회의를 하다가 이의원 뉴스를 접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예의 못된 버릇이 발동한 것』『다 나온 얘기를 둘러쳐 생떼를 시작할 모양』이라며 가볍게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짐짓 사태가 여야간의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며 일반국민이 이의원의 주장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에 신경을 썼다. 특히 평민당이 노대통령을 직접 물고 들어가는 대목에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캥기는 듯 하다.
또한 언론들이 이의원의 주장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할 경우 사건마무리에 적지않은 혼선과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양심선언」이 아니라 「비양심선언」』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측의 내심은 맞대응이 자칫 평민당의 계략에 말려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비서실장등 핵심참모들은 이날 노대통령과 오찬을 나누며 수서문제가 원만한 해결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사태가 또다시 악화되자 아주 난감해하고 있다.
○…민자당은 평민당 이원배 의원의 「양심선언」이 공개됨으로써 그 내용이 진실이든 아니든 지금까지의 검찰수사만으로는 국민들의 납득이 어렵지 않느냐는 우려와 함께 노태우 대통령이나 국회·정당차원에서의 대처방안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자당 의원들은 『엄격히 말해 국회의원 5명 구속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수사결과는 당원이나 국민들의 납득이 어렵고 오히려 또다른 불신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데 대체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지역구에 내려가 귀향활동을 하던 정순덕 사무총장과 김윤환 총무,최각규 정책의장 등은 16일 급거 상경해 청와대와 긴밀히 연락을 하며 이원배 의원의 「양심선언」이 정치권은 물론 나라전체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민자당 중진의원과 소장파 의원들은 이제 극약처방에 가까운 제2의 6·29선언이 나오지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신상우의원은 17일 『현재의 상황은 잔꾀로 해결될 수 없으며 청와대·내각·각 정당에서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 정당의 내부 질서개편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물갈이도 할 수 있으면 해야한다』고 주장.
당 중진의원들은 18일 확대당직자회의와 20일 당무회의 등을 통해 당 지도부 개편등도 거론할 태세다.
백남치·최기선 의원 등 초선의원들은 『조기총선·물갈이론·당직개편 등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백의원은 『대학이 곧 개강을 하고 노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데 이같은 파문은 정치권의 함몰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우려.
소장파 의원들은 당지도부의 대책과는 별도로 주초부터 모임을 갖고 『용기있는 대응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으며 김중위 의원은 『정치판의 민주적 싹쓸이도 방법은 방법』이라고 했다.<박병석·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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