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15년 전 백담사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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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을 떠난 뒤 친인척들이 비리와 관련돼 구속되고…지난 9개월은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이런 대(對)국민 사과를 하고 그가 백담사로 숨어든 게 1988년 11월 23일. 설악산은 이미 한겨울이었다. 백담사 앞 개울은 두껍게 얼어붙었고 눈발이 날렸다.

백담사는 천혜의 요새(要塞)였다. 가파르고 험한 산악에 둘러싸여 유일한 진입로는 개울 위 외다리뿐. 그 다리는 경호원과 경비경찰들에게 가로막혀 접근이 철통 봉쇄됐다.

기자들은 덕지덕지 껴입은 채 매일 동틀 무렵 용대리 민박집을 나와 긴 산길을 올랐다. 백담사 개울 건너편에 도착하면 모닥불을 피우고 온종일 진을 쳤다. 혹 절에 들어갔다 나오는 면회객이라도 있으면 막아서서 "어떠시냐. 뭐라 하시더냐"고 캐물었다. 그래서 한두 마디 주워들으면 그날의 수확이었다.

해가 지면 산을 내려와 인제경찰서 정보과로 전화를 두드렸다. '시골 경찰서'정보과 형사들은 그래도 서울보다는 덜 깍쟁이여서 간혹 자기들이 챙긴 경내 소식을 한 쪼가리씩 던져 줬다.

'전두환 부부 은둔 현장'의 취재는 그랬었다. 그런 빈약한 재료로 근근이 기사를 만들었다. 全씨가 담배를 끊었다든가, 이순자 여사에게 신경쇠약 증세가 생겼다든가, 누가 면회를 다녀가고 강원대생들이 원정시위를 나서려다 진압됐다 등등.

적막한 겨울 산속의 하루는 12월이 되면서 더 춥고, 배고프고 지루했다. 눈 덮인 숲속을 뒤져 땔나무를 구하고, 가져온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꽝꽝 얼어붙은 개울에 구멍을 내 겨울잠 자는 물고기도 잡았다. 물속에 큰 돌을 내리 박아 새끼손가락만한 한두 마리가 떠오르면 건져 구워 먹었다. 그러니 산을 내려올 때면 입 주변과 콧구멍과 손끝이 새까매진 공비(共匪)의 몰골이었다.

그 15년 전 기억이 요즘 떠오른다. 정치자금 스캔들. 그 원조가 바로 전두환씨였다. 기업에서 수천억원 비자금을 거둬 통크게 썼다. 그 수법을 후임 대통령인 노태우씨가 이어받았다. 그러면서 정경유착의 역사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두 사람은 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 아래 구속됐다. 관련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대거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래서 그때 '이제 그런 유착 비리는 없어지려니'했다. 한데 아니었다.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낸 강골 YS(김영삼)도 결국엔 초라한 말년을 맞았다. 아들과 측근들의 정경유착 비리 때문이다. 뒤를 이은 DJ(김대중) 역시 같은 처지다.

대통령과 그 언저리가 모두 죄인이 되는 전통이 한 대(代)도 거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새 정부 출발 몇 달도 안 돼 여야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시끄럽다.

지금 인터넷에선 '백억쏭'이라는 노래가 유행한다. '십억 수십억 받았네/백억 수백억 받았네…'로 시작된다. 정치인이 돈을 먹는 만화가 곁들여진 동요 개사곡이다. 정치인은 돈벌레로, 기업인들은 돈으로 특혜를 사는 장사꾼으로 인식된 셈이다.

대검 중수부는 6일 불법 대선자금을 자수하는 기업은 선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하겠다"는 정.경의 다짐도 잇따른다. '고해성사 후 사면'이라는 편법도 정치권에 제기돼 있다.

두고볼 일이지만 의문이다. 오랜 정경유착의 고질이 과연 그 정도로 치유가 될 것인지.

아무래도 우리에겐 '피에트로'식 대수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러다 때를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김석현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