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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띠 원통구조에 명쾌한 형태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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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6·25세대의 미술이 열정적 앵포르멜(비정형미술) 이었다면, 4·19 세대의 미술은 기하학주의로 구별되며, 이 양대 조류가 한국 현대미술의 초창기를 주도했다고 볼 때 4·19세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이승조씨를 꼽을 수 있다.
아깝게도 작년 50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씨의 이번 회고전(7∼28일·호암갤러리)은 우리에게 한 작가의「예술적 힘의 영구성」을 실감시켜줌은 물론이고 고인의 회화적 독창성을 새삼 깨우쳐주고 있다.
작가의 출발은 기본적 조형질서를 찾는데서 비롯되었다. 뜨겁고 열정적인 앵포르엘 회화를 주인으로 섬기는 대신 차갑고 이성적인 「탈회화적 추상」에의 끈질긴 몰두로 그의 예술여정은 점철되었다. 이 점은 그가 기본조형 질서의 고양을 목적했던 「오리진」그룹 결성과 활동의 핵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확인된다.
이승조씨 만큼 고집스런 작가도 없다. 그는 평생을 평면의 2차원성과 씨름하면서 기하학과 대결한 승부사였으며, 그래서 무려 25년간「핵」 이라는 주제만을 한결같이 앞세운 융통성 없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고지식한 대결 속에서 이른바 「파이프통」 이라는 특유의 형태를 발견, 천착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을 꽃피워낼 수 있었다.
왜 하필이면 「파이프통」일까.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원자요소」, 즉 「핵」이듯이 모든 대상을 기본조형으로 환원시키자는 의도에서며, 다른 하나는 화면을 이미지의 그릇이 아닌 실체 자체로 전환시키자는 의도에서다. 말하자면 「환원」과 「실체탐구」의 결정체로서 지금의 원통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화면의 표정은 냉랭하긴 해도 퍽 다양하다. 색 띠로 만들어진 원통구조는 금속성의 견고한 물질성을 띨 뿐만 아니라 명쾌한 형태감, 반복되는 형태의 풍부한 장식성도 함께 거느린다. 그러면서도 그 색 띠는 색면대비, 역학적 구조, 순전한 시각성을 동반하면서 절대형태로 순화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재현·모방을 포기하는 대신 순수형식의 요소들로 회화의 결핍된 내적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건조하게 뵈는 도형이지만 그것은 농축된 화면 형성력과 밀도 높은 표면감, 그리고 형태적 완료성에 힘입어 평면의 정화된 상황을 제시해주고, 또 회화의 본질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조해야할 점은 그의 엄격한 형과 절제된 색 처리가 한국미술의 기하학적 추상을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형태적·구성적 변화, 색면대비·시각적 명료성을 극대화시키면서 온갖 사물의 질서를 기본적으로 원통 속에 가두어 두고 그 속에서 평면의 항구적 리얼리티를 찾으려했다. 따라서 원통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었으며 그 자체가 실체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색이 절제되고 형태가 단순화되며 화면이 평면화될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결과이며, 그는 이처럼 주도 면밀하게 계산된 기호의 구사를 통해 회화의 광활한 자율성과 순수성의 텃밭을 일궈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회화의 소명은 기하학적 평면과 구축적 공간을 창출하는데 있다고 믿은 모더니스트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형태와 기법만으로도 진실로 실재하는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음」을 실증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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