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 외국인 시대] 下. "일한 만큼 번다" 新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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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내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시브로(17)는 지난달 28일 판재를 다듬다 손가락 3개가 잘렸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접합수술을 마쳤지만 치료비가 부족했다. 사장은 "못내겠다"고 버텼다. 그러곤 연락마저 끊어버렸다.

이처럼 산재를 당하고도 호소할 곳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임금을 떼이고 폭행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고용허가제가 든든한 보호막이다.

불법체류자 멍에를 벗은 외국인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한다. 다치면 산업재해로 인정돼 치료를 받고, 아프면 건강보험 혜택도 본다. 퇴직금도 받는다.

지난해 한국에 온 주징(28.중국).장미용(25.중국)씨는 "쫓겨다니지 않아도 되고, 직장도 번듯해 일한 만큼 월급도 제대로 받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은 건설현장을 전전하다 최근 안산의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합법의 우산 아래서 이들은 '진짜' 코리안 드림에 부풀어 있다.

파테마(24.여.방글라데시)는 "거리에 나서면 범법자로 보는 시선에 질식할 것 같았는데, 떳떳하게 지낼 수 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서울 가리봉 중국동포타운 김용필 사무국장은 "체류확인이 마감되자 전화가 뚝 끊겼다. 합법화로 걱정거리가 없어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벌써부터 '투 잡스'로 변신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엔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 최대한 많이 벌겠다는 것이다. 직장 밖에서 일하면 불법이지만, 설마 아르바이트까지 단속하겠느냐는 생각이다. 실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 인원은 2백명이 채 안된다. 하지만 이들 외국인과 공존시대에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첩첩이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의 권익보장과 기업인들의 경영권이 충돌할 수 있다. 업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노조 결성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서선영 선전국장은 "최근 지역노조에서 외국인을 가입시키기 위해 문의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허가제가 여전히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업체를 옮길 수도 없고, 가족을 초청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3권을 보장한다지만, 계약을 해지하면 곧바로 추방되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고용허가제 반대투쟁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 외국인노동자센터 최의팔 소장은 "노조활동은 근로조건이 열악할 때 가능한데, 현재 이들의 상황은 좋은 편"이라며 "설립돼도 공동 투쟁의식은 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업주와 국내 근로자의 인식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구의 1%가 외국인인 시대에서 공존공영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 하갑래 고용정책심의관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경제성장의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생산성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도 이제 우리 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이란 얘기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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