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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서두르는 「수서사건」/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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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물증 들이대야 털어놓는 정 회장/의원들 수뢰여부 한보임원 통해 확인/혼좀 내줬다는 구타설등 구태도 여전
지난 2주일간 전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켜왔던 수서지구택지 특혜분양사건이 16일 국회의원 5명을 비롯한 한보그룹 정태수회장,장병조 전청와대비서관등 관련자들을 구속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앞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발표가 있겠지만 더 이상의 구속자나 「거물급인사」의 소환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역없는 수사를 다짐했던 당국이 과연 의원 5명과 청와대 1급비서관,건설부국장등 고위공직자 7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그친데 대해 국민들이 어느정도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그간의 수사경위·수사결과에 대한 반응·향후대책 등에 관해 일선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정리해본다.<편집자주>
□참석자
▲정치부=김현일·전영기기자
▲경제부=길진현·이춘성기자
▲사회부=권일차장,신성호·김석현·김석기기자
▲사진부=김형수기자
­수서사건이 여야의원 5명에 대한 구속으로 일단락을 지은것 같습니다.
정­관­경의 유착이 빚어진 6공최대의 비리라는 관점에서 온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 사건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데 대해 일부 국민들은 더 파헤쳐야 했다는 주장도 없지 않은것 같습니다. 우선 이제까지의 수사결과에 대한 반응부터 들어보죠.
­우선 청와대는 무엇보다 장 전비서관만으로 그친 수사결과에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겠느냐에 신경을 쓰는것 같아요. 서울시에 내려보낸 공문이 비서실장·행정수석비서관의 결재를 얻은 것으로 돼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거기에다 여당의원이 경제수석 비서관까지 한때 연루시킨 사안이었으니.
­그러나 청와대관계자들은 비서관이 검토해오면 수석비서관이나 비서실장은 기계적으로 사인을 해오는 관행을 들어 장씨가 돈을 받고 정신없이 나선것으로 「이해」해 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그렇다고 일반국민들이 선뜻 납득할까요.
­그점이 바로 청와대의 고민인것 같아요.
­주무관청으로서 가장 수사의 초점이 됐던 서울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사람도 뇌물수수등 이권개입이 없었다는 수사결과에 크게 안도하면서도 개운치않은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그것은 외압에 굴복한 시의 한심스런 위상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거론되는 박세직시장 경질설에 대해서도 「사실상 피해자인데도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반응도 없지 않은것 같습니다.
­반면에 전·현직시장이 책임떠넘기기 공방을 벌여 공직자로서의 위신과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데 대해선 「무책임하고 미숙했다」는 평도 있지요. 피차 「위치」를 고려하지 못한 분별없는 행동으로 결국 양쪽모두 상처를 입었다는 겁니다.
○여론따라다닌 수사
­김대영차관과 이동성 주택국장,윤학로·윤유학 전택지개발과장등이 감사원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건설부는 비록(?) 「법령의 확대 해석」이라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금품수수에는 관련되지 않아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가 막판에 한방 얻어터진 꼴이어서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엉뚱하게 주무국장도 아닌 국토계획국장 이규황씨가 한보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건설부내에서는 이상희장관의 인책설이 설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장관에 대한 정치권의 인책요구를 이국장건이 있기전까지만 해도 건설부를 속죄양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관행」으로 여겨 승복할수 없다던 건설부로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나 건설부 일각에선 이국장이 유탄에 맞았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공무원이 하나도 없으니 직접 관련이 없는 이국장이 당한 것이라는 얘기죠.
­금융계는 검찰의 수사가 금융계에까지 확대되지 않나 한숨을 돌렸다는 표정들입니다.
­그러나 금융계는 이 사건이 몰고올 후유증에 대해선 걱정이 태산같은것 같아요.
비교적 경영상태가 좋은 한보철강과 거래하고 있는 서울신탁은행은 입장이 나은편이지만 한보주택의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은 초상집분위기이에요.
특히 조흥은행은 은행장의 중임여부가 다음주에 열리는 주총에서 결정되는데 중임은 「이미 물건너갔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한보사건에 대해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려놓았다」는 반응들입니다.
전경련에서는 한보의 제명론까지 나오고 있는데 재계인사들은 이 사건으로 기업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요.
­정치권은 이번에 5명이 한꺼번에 구속된데 대해 어디서부터 손을 써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건국이래 국회의원 프락치사건을 제외하곤 이번과 같이 의원들이 대량으로 구속된 것은 처음이지요.
­민자당은 구속된 오용운·김동주·이태섭의원이 각각 국회건설위원장·사무부총장·당무위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망연자실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상당수 의원들은 이번 사건의 「음모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자체의 도덕적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표정인것 같아요. 다시말해 행정관청이 안되는 일을 되게하는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돈을 먹었다면 권력의 크기와 영향력상 국회보다는 권력핵심이 더하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따라서 공무원은 거의 없고 국회쪽만 5명씩 구속된것은 형평상 억울하다는 반응입니다.
­물론 일부의원들은 의원윤리강령을 여야합의하에 의결한지 얼마나 됐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느냐며 금배지를 달고 다니기는 커녕 본인은 물론 가족들조차 얼굴들고 다니기가 어렵게 됐다고 자성하는 눈치입니다.
­평민당은 처음부터 사무차장인 이원배의원이야 혐의가 깊어 어쩔수 없다지만 총재비서실장인 김태식의원마저 구속된데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사건전개 과정에서 평민당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김대중총재와 이원배의원의 「자금 커넥션」부분입니다.
­검찰수사결과 이의원이 자신은 물론 당비로도 조달한 것이 밝혀졌지만 그래서인지 평민당이 처음에는 이의원을 보호하려했다가 뒤에는 「버리기로」한 것이 확연해 주목됩니다.
­김총재 자신도 초기에는 『내가 적법여부를 가려 도와주라고 했다』는 식으로 이의원을 두둔했다가 이의원의 한보철강대리점 경영설,이의원이 절차를 무시하고 협조공문을 황급히 만들어 준 사실등이 밝혀지자 「이원배 꼬리」를 자르려는 모습이 역력했지요.
○의원도덕성 시큰둥
­이의원은 초기부터 청탁관련 금품수수설이 나돌았고 본인도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은 눈치였어요.
이동성 건설부주택국장이 검찰수사과정에서 구타당했는지를 두고 건설부 안팎에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이국장 자신이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해명을 두세차례에 걸쳐 했음에도 구타의혹의 꼬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행태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사례인 셈입니다. 이런 점을 이제부터라도 검찰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것으로 생각됩니다.
­검찰에서는 이국장이 카메라에 부딪친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아무리 그렇긴해도 검찰에서 나오자마자 병원에 입원했다가 또 서둘러 퇴원하는 등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않은 것 같습니다.
­이국장사건이후 검찰과 사진기자단 사이에 「신사협정」이 맺어졌지요. 14일 국회의원들을 소환할 때부터 점잖게(?) 걸어들어오도록 해 충분히 찍도록 했어요.
­하여간 검찰과 본인의 부인으로 더이상 확대되지 않고 지나갔지만 검찰이 어떤 결론에 집착해 마구잡이로 연행자를 추궁하는 구태를 보여주는 것같아 씁쓸했습니다.
­검찰은 이국장이 하도 「뺀질거려」조금 혼내주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번 수사과정에서 옥에 티였음은 분명합니다.
­사건이 터지자 처음 며칠동안 소극적 반응을 보이던 검찰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된 배경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검찰은 5일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감사지시후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 속에서도 수사착수시기에 대해 갈팡질팡해 청와대 핵심참모까지 거론되는 이번사건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태도가 역력했습니다.
­수사가 미적거리자 언론이 일제히 검찰을 성토했는데 정구영 검찰총장은 마지못한듯 7일 내사를 벌인다고 천명했고,이튿날 서울지검 검사를 차출하는 등 뒤늦게 서두르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2일 수서사건 문제제기후 6일만에 수사에 나선 셈인데 그동안 한보측은 증거인멸을 했을 가능성이 많아 결국 이번수사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지요.
­검찰이 이렇게 망설인 것은 수사기술상 고려보다는 워낙 민감한 문제라 청와대 등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은데서 온 혼선으로 보여졌어요.
­연일 터져나오는 수서비리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검찰은 당초 수사방향을 ▲주택조합 관련비리 ▲한보의 로비설 ▲외압부분으로 나눴으나 여론이 뇌물수수쪽에 최대의 관심을 보이자 한보측 임원 소환을 통한 정회장 비자금 장부확보에 주력했는데 의원수뢰부분등은 주로 한보임원들 입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정 회장 처음엔 딴전
­한보임원들을 수사하는 조사실에서는 간간이 고성과 호통이 터져나오기도 했는데 임원들이 의외로 로비내용을 잘모르는데다 회장에 대한 「충성심」때문에 입을 잘 열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겁니다. 결국 막판에야 입을 열었지만.
­반면 정회장은 검찰이 제시한 물증이외에는 어떤 자백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소문등을 확인할 때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설령 물증을 제시해도 『생각이 안난다』는 등 딴전을 피웠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세무공무원출신으로 대기업의 총수까지 오른 사람이라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수사과정내내 큰 관심을 끈 대목은 정태수 회장이나 장병조씨가 혹시 폭탄선언을 하지 않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이 모든 진실을 말할 경우 자칫 정치권등이 그야말로 파국을 면치못할 것이란 예상때문이었습니다.
○언론역할 크게 한몫
­결국 정씨등은 큰 「말썽없이」수사에 응했는데 정회장이 소환된 12일밤에는 이례적으로 최명부 중수부장등이 철야하며 정회장 진술내용을 상부에 즉각즉각 보고했다는 후문입니다.
­장병조씨의 경우는 참고인 조사결과 약간 무리는 있으나 직권남용으로 구속할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뇌물부분을 밝혀내지 못하면 『장씨가 아무런 대가없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상부의 지시자가 있을것 아니냐』는 자연스런 의문에따라 수사확대여론이 일것을 우려,뇌물수수사실을 찾아내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사건 수사의 최대분기점은 12일이었습니다. 박세직 서울시장과 고건 전시장이 오전부터 극비리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오후에는 정태수 한보그룹회장이 소환됐으니까요. 전·현직 서울시장에 대한 조사가 외압부분에 대한 마지막 확인작업이었다면 정회장 소환은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의 뇌물부분에 대한 본격수사착수였던 셈입니다.
­이처럼 검찰수사가 절정에 이르고 있을때 전·현직 서울시장에 대한 극비소환조사는 중앙일보의 큰 특종보도였습니다.
이들의 소환조사 사실을 1판에 단독으로 보도한데 이어 우리 취재진이 이들의 조사장소를 집요하게 추적,2판에는 고건 전서울시장이 서울지검 조사실에서 조사받는 사진까지 특종으로 보도함으로써 완벽한 특종을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검찰에서는 이들에 대한 소환사실을 숨긴채 윤백영 서울시부시장을 이날 새벽 삼청동검찰청 안가에서 조사한뒤 귀가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취재팀은 서울시장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판단아래 이 부분을 집중 추적,오전 10시쯤 소환사실을 확인했고 조사장소가 최소한 안가는 아닐것이라는 생각에서 호텔과 서울지검을 뒤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88년 새마을본부 비리사건때처럼 언론이 먼저 대대적인 「칼」을 대 당국의 감사 및 수사로 이어지게 한 전형적인 폭로성 대형비리사건이라는 점에서 언론사에 남을 사건이지요.
­사건수사 과정에서 한때 정회장이 잠적해 검찰의 사전 각본수사설이 튀어나오기도 했지요.
­그 얘기는 지난 10일 한양대병원에서 나간뒤 12일 소환될때까지 호텔신라에 머문 정회장의 거취때문에 나온것 같아요. 검찰은 이사건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정회장이 혹시라도 잠적하기라도 하면 엉뚱하게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어 동태파악만 했다는 겁니다.
­검찰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성격상 미리 만나 기본적인 수사내용 및 방향에 대해 어떤 「약속」이 오간게 아니냐는 의혹은 계속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발단이후 청와대측의 반응도 미묘했지요.
­청와대는 수서와 관련한 거의 모든 발표나 논평등이 하루도 못가 모두 뒤집히자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5일 삼청동 안가에서 열린 당정회의부터가 패착의 시발이었지요. 이날 회의에선 「수서」가 법적으로 문제될게 없다는 전제 아래 『수사를 않겠다』고 했거든요. 그랬다가 『진상규명을 회피하려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금방 방침을 급선회했죠.
­그 직후 나온게 지방순시중이던 노대통령의 특별감사지시지요. 모든게 언론과 여론에 끌려다니듯 했으니 의혹은 의혹대로 남고 일은 일대로 안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이 확대돼 불똥이 청와대로 날아들자 장비서관 사표를 수리했지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뒤늦게 『우리의 대처가 늦은게 아니다. 감사원 감사뿐 아니라 검찰도 사건보도 직후부터 내사를 해왔다』고 해명하는 등 세간의 의혹어린 눈길을 털어내기에 바빴습니다.
○장씨 감사 「해명용」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서울시·건설부 등에 대한 감사를 벌인 감사과정이나 결과도 뭔가 앞뒤가 안맞는 감이 있지요.
­감사원이 중간감사 내용을 발표한것도 전례없던 일입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입니다. 감사내용을 감사위원회의에 부의,의결을 거쳐 내놓는게 상례인데 지적된 문제를 일단 쏟아놓아야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관계부처의 반발도 있었고 『나중에 무슨 책임을 지려고 그러느냐』는 내부의견 충돌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장비서관에 대한 감사는 감사라기보다는 「해명용」이라는게 적당할것 같습니다. 일단 사표를 내게 한뒤 감사를 벌였던 감사원은 『장씨가 서울시의 방침을 바꾸도록 많은 역할을 했다』『장씨의 언행을 압력으로 받아들인 것이 인정된다』는 등 장씨「선」에서 마무리를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습니다.
­한보건에 관한한 국세청의 조사가 미적지근하다는 세평입니다.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지 까지도 가려낼수 있다는 국세청이 이번 경우만은 애당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식이었고 조사도 언론의 추적결과에 마지못해 응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다른때 같으면 「당연히」착수했을 세무조사 또한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코멘트와 함께 그럴 의사가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어 세간에서는 「정태수 한보회장이 국세청출신이어서 그런게 아니냐」는 식의 의혹어린 눈총도 없지 않았습니다.<정리=김석현·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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