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도 진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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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쓴 금메달리스트. 바레인의 알가사라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히잡을 쓰고 도하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200m에서 우승했다. 알가사라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도하 AP=연합뉴스]

도하 아시안게임은 사상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카타르)에서 벌어진 대회였다. 개막 전부터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쓰는, 일종의 스카프)을 쓴 여자선수들이 화제였다. 히잡 쓴 축구선수, 사격선수, 조정선수 등이 각국 사진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참가에 의의'를 둔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12일(한국시간) 바레인의 루카야 알가사라(24)가 육상 여자 200m에서 23초19로 우승하면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알가사라는 히잡은 물론 팔.다리를 모두 가린 유니폼을 입고도 무서운 스퍼트로 1위로 골인했다.

"남들은 0.001초라도 단축하기 위해 핫팬츠에 배꼽티도 모자라 면도까지 하는데 그런 거추장스러운 복장으로 우승까지 하다니…."

기자들의 질문에 알가사라는 태연했다.

"히잡을 쓰고 달리면 공기의 저항을 더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슬람 전통의상이 내 질주를 더 빠르게 한다."

사실 알가사라의 히잡은 일반 히잡이 아니라 '기능성 히잡'이다. 후원사인 나이키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첨단 소재로 특별 제작한 것이다. 옆에는 나이키의 로고까지 새겨져 있다.

한국 육상대표팀 손주일(단거리) 코치는 알가사라의 의견에 동조했다. "옆에서 자세히 보니 히잡과 유니폼이 하나로 붙은 원피스였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입는 타이즈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400m에서 우승한 캐시 프리먼(호주)도 모자와 상.하의가 붙은 원피스형 타이즈를 입고 뛰었다. 그러나 이진일(중거리) 코치의 말은 달랐다. "아무리 기능성이라 해도 히잡을 썼기 때문에 달릴 때 목도 불편하고, 특히 팔 동작이 자유롭지 못해 기록에는 마이너스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육상선수를 시작한 알가사라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도 히잡을 쓰고 출전했고, 올 6월 초청 선수로 출전한 체코선수권대회 200m에서도 1위를 했다.

도하=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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