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사건 한단계 매듭(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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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서 특혜분양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과 정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 5명·청와대비서관 및 건설부국장·주택조합간사 등 9명을 구속,수사를 사실상 매듭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어느 정도 예상되어온 일이기는 하지만 한사건으로 대기업 총수와 현직 청와대 비서관 및 중앙행정부처국장이 쇠고랑을 차게되고,특히 현직 여야 국회의원 5명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사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패해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특히 정치권과 고위 관료조직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돈과 결부되어 썩을 대로 썩어있다는 한심한 작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것이었다.
민원이란 핑계를 대고 실은 돈과 결탁해 검은 속을 채워온 공직자들의 구조적 비리가 우리 사회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원을 양산해 왔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배신감과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체제를 수호하고 제도를 만들어 집행하면서 그 가장 큰 혜택을 누려온 제도권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및 대기업의 파렴치 합작극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치,우리의 경제와 관료조직을 맡겨 놓을 수 있겠느냐는 극단적 시각도 널리 퍼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가 이번 사건에 국한된다고 믿어지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돈이 권력을 매수하고,권력이 돈을 낳게하는 전근대적 정경미분화 상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끊임없이 보고있다. 그럴때마다 「어디까지 파헤칠 것이냐」를 주시했고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당국자의 되물음을 받아왔다.
그러는 동안에 진상의 실체규명이나 근원적 치유대책은 흐지부지된채 여론무마용의 처리로 사건은 끝나왔다.
이번 사건도 우리는 그 예외로 보지 않는다. 첫째,검찰은 일찍이 없었던 의혹사건을 두고도 단서가 없다며 수사를 미루어 왔다.
부동산투기전담반까지 두고있는 검찰이,특혜분양이 결정된 직후는 그만두고라도 뇌물의 냄새가 나는 외압성 문건이 신문에 공개된 뒤까지 팔장만 끼고 있었던 것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극단적으로 증거를 은폐할 충분한 시간이 지난뒤 지난 7일에야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은 그 결과에 의혹을 갖게된 것이다.
둘째,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정회장이 가장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음에도 외국에서 돌아온 즉시 소환조사를 않고 미루어오면서 각본을 짜고있다는 의혹을 산 점이다.
이는 핵심내용을 쥐고있는 정회장에게 적어도 적당한 선을 설정하고 진술을 준비하도록 해줬다는 의혹을 사지 않을 수 없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검찰수사의 과정이 낳은 결과이겠지만,국회의원을 무더기로 구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행정행위를 했거나 하도록 압력을 넣은 공직사회 고위층이 수사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의혹이다.
국민들은 뇌물과 전혀 관계없이 2년이상 민원이 되어온 사안을 특혜쪽으로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실무자가 그 이상선의 내락없이 처리했겠느냐를 의심하고 있다. 백억원이 넘는 탈세가 묵인되고 있었던 사실도 설명돼야 한다.
앞으로 남은 법절차를 통해서라도 이같은 의혹은 명백히 규명돼야 하며,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에 대한 치유책이 나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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