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전주 문학의 특성 - 전통 좌담|"풍류의 멋을 아는 판소리 본고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북은 강경 벌, 서남은 만경 벌/남으로 남으로 길게 뻗은 철뚝을 넘어/드문드문 푸른 벼 이삭에 파묻힌 마을』(김해강의 『오오 나의 모악산아』 중). 넓은 벌을 끼고 있는 풍요로움이 넘쳐 멋과 맛을 이룬 고장 전주. 우리 민족문화의 특성이랄 수 있는 농경문화의 본산지 전주는 예부터 문화·예술을 꽃피워오다 마침내 한민족의 삶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우리민족 특유의 종합예술 판소리를 낳게 했다.
판소리를 이룩한 전주인들의 풍부한 언어와 유장한 가락은 문학으로도 그대로 흘러들어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며 한국문학을 떠받치게 했다. 농경문화로서의 한국문화, 문학의 원형질을 이룩한 전주문화의 특성 및 문학전통과 현황, 문제점 등을 전주 문인들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이기반 = 전주는 후백제의 옛 도읍인 동시에 조선조의 발상지입니다. 전주는 이름 그대로 전란에 한번도 시달린 적이 없는 온전한 고을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호남평야 등 드넓은 평야를 지니고 있는 도작문화의 중심지가 전주입니다. 정치·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가 이룩해 놓은 보드랍고 윤기있는 비단결 같은 것이 전주문화의 특성입니다.
▲이운용 = 밖에서 천둥벼락이 쳐도 눈깜짝 않는것이 전주사람들입니다. 아직도 전주는 옛 양반의 거드름 속에서 전통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통 고수의 반대급부로 변혁·개혁에 대한 진취적 욕구가 부족한 것도 사실 아닙니까.
▲이병천 = 자연이 까탈부리지 않으니 양반걸음처럼 느리고 게으른 것도 특징입니다. 모든 환경이 너무 완벽하게 훌륭하기에 응전력이 없고 순응적인 문화가 전주문화입니다.
▲반 = 시민의식이 안일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안일함에서 문화가 잉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좀더 진취적이지 못하느냐는 젊은이들의 원망도 있을 수 있겠지만 농경문화의 중심지로서 우리의 선인들이 좋은 문화풍토를 마련한데 대한 고마움은 잊지말아야 되지 않을까요.
▲용 = 순하디 순한 인심이나 기질 뿐 아니라 억눌릴 때는 봉기할 수 있는 뚝심·의협심도 갖춘 것이 전주입니다. 갑오경장의 녹두장군 혁명의지가 드러난 곳이 이곳 아닙니까.
환경에 조화·순응하는 정서와 저항하는 의지가 동시에 흘러든 것이 전주권 문학입니다. 이곳에 나서 평생 이곳에 머무르며 전주의 현대문학을 일군 김해강(1903∼1987)의 시에 이러한 양면적 특성은 그대로 드러나지요.
▲반 = 192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1회 당선자로 우리나라 신춘문예 출신 첫 시인이 된 김해강의 데뷔작 『새날의 기원』에서 『오오 새날이여!/이땅에 열리소서 힘차게 열리소서/이땅에 빛나소서 아름다이 빛나소서』라고 했듯 일제 암흑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그날을 기구하는 열망이 강하게 나타나지요. 또 김창술·김목낭·신석정·김환태 등 일제 때 이곳 출신 문인들은 많았지만 다들 서울 등 타지에서 활동하고 김해강만이 전주에서 교단을 지키며 민족정기를 심는 한편 고갈돼 가는 민족정서를 시에 담았지요.
그 문하에서 김해성·신찬균·최일남·하근찬·홍석영·이가림·박정만 등 기라성 같은 문인을 길러내면서요.
▲김순영 = 대학강단 등 일체의 명예욕을 버리고 평생 평교사로서 전주문단을 일군 김해강이 우리 문학사에서 너무 소외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5백여 편의 태양 같은, 용광로 같은 정열의 조탁된 시를 남기고도 향토에서 평교사로 남은 비굴하지 않은 청렴한 삶이였기에 소외당하는 우리의 문학풍토가 안타깝습니다.
▲반 = 광복 후 김해강의 뒤를 이어 백양촌·신석정이 전주문단의 기폭제 역할을 하지요. 1945년 8월27일 김해강·백양촌 중심으로 「전주문화동지회」를 결성, 활동을 펼치다 6·25로 폐허가 된 문단을 신석정과 백양촌이 피난에서 돌아와 가꾸었지요. 51년부터 백양촌은 전북일보의 「화요문예」란, 신석정은 태백신문의 「토요시단」란을 맡으면서 작품발표의 장을 마련, 전주문단에 재기의 기운을 불어 넣었지요.
▲용 = 또 겉보리 세말의 강사자리를 찾아 피난 중 고향에 내려온 서정주·이병기 등이 합세하며서부터 전주는 우리 문단의 중심으로 떠올랐지요. 서정주를 중심으로 전주문인들은 51년 문총까지 결성하기에 이르렀으니까요. 53년 이병기를 중심으로 김해강·신석정·백양촌·장순하·박범순·최순범 등이 결성한 「가람동인회」도 우리 문단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삭막하던 시조단에 「신조」라는 지면을 제공, 현대시론의 기폭제 역할을 했지요.
▲반 = 이병기·신석정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60년대 전주문단은 전성기를 맞이하지요.
▲영 = 60년대 초 신석양을 중심으로 신석상,박조웅·윤형묵·이홍근·서재균·조종사 등이 결성한 「탈색지대」는 전주 최초의 소설동인으로 시가 우세했던 이곳에 소설운동을 일으켰지요.
▲반 = 동인지 발행·시화전·시낭독회·문학강연 등 확대된 문단에 힘입어 문학행사가 활발해진 것이 70년대지요.
▲영 =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전주의 문학풍토에 힘입어 중앙문인들이 이곳에와 시화전 등을 개최할 정도였지요. 시민들이 시를 잘 알아주고 작품도 잘 사주니까요.
▲용 = 그러한 문단 팽창속도는 80년대 들어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여기에는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한 신진작가들의 대두가 지대한 공헌을 했지요.
▲천 = 81년도의 「남민시 동인회」 등장은 주목할만 합니다. 80년대 초 중앙이나 타지역에서 결성된 「5월시 동인」 「열린시 동인」 등과 같이 남민시는 젊은 동인들로서 우리의 억압된 현실구조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남녘 백성들인 농촌사람의 현실에 주목, 우리의 문학현장에서 떠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농민문학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용 = 나름의 창작활동과 동인활동, 그리고 범전주문단적 문학활동이 맞물려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 전주문단의 현황입니다. 이러한 결속에 힘입어 동인은 동인대로, 혹은 문협차원에서 문학강좌·문학기행·창작교실·백일장 등 시민을 위한 문학행사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반 = 전국적인 문예지를 비롯, 많은 동인지 등의 발표지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뭔가 소외감 내지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지역문단으로서 전주문단의 현실입니다.
▲영 = 이곳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은 전혀 알아주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난쟁이 골마리 추어올려주듯 올려줘봤자 올라갈 것도 없는 하찮은 문인이라도 중앙에서 활동하면 추어올려주는 문단구조가 문제입니다.
▲용 = 삶과 삶의 공간에 바탕을 둔 문학, 곧 향토문학으로 작가·평자·독자의 세박자가 맞아 돌아갈 때에 지역문학은 활성화돼 나갈 수 있지요. 또 중앙의 매체·평단 등 문학관리층들도 명실상부하게 전국을 커버하는 중앙문단이 되기 위해서는 수도권의 권위의식을 떨쳐 버리고 지역으로 좀더 눈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