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알기에 개도국 아동 남 같지 않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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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기구 유니세프가 11일 창립 60주년(기념 로고)을 맞았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유럽과 중국 어린이를 돕기 위해 창설된 유니세프는 한국과의 인연이 특별하다. 한국전쟁 당시 6300만㎏의 분유와 30만 장의 담요 등 수많은 긴급구호물품을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설립, 유니세프 역사상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94년 당시 5000여 명에 불과했던 국내 후원자 수는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봉사자도 500여 명에 달한다.

◆ 전쟁 고아에서 기부자로="노력해도 먹고살 길 없는 절대빈곤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개발도상국 어린이가 남 같지 않아요."

조그만 기계제작업체를 운영하는 박영삼(64.서울 마장동)씨. 92년 우연히 유니세프에 관한 기사를 보고 월 30만원씩 후원하기 시작했다. 재난이 있을 땐 200만~300만원을 쾌척해 연간 600여만원씩 15년째 기부하고 있다. 연 수입의 10%가 넘는 적지 않은 액수다.

박씨는 전쟁 중이던 51년 피난길에 부모와 헤어져 1년 반 동안 서울의 한 고아원에서 지냈다. 그는 당시 미군이 도움 준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미 공군이 고아원과 자매결연을 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줬어요. 특히 미군 파일럿 대위 한 분은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참 잘해 줬죠." 미군 대위는 그를 입양해 미국에 데려가려고도 했다. 박씨는 나중에 부모와 재회했지만 그때의 고마운 마음은 잊지 않았다. 박씨는 "이제 밥 먹고 살게 됐으니 남을 도와야 할 때"라며 "쓸 돈 아껴서라도 죽을 때까지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력 18년, 베테랑 할머니 봉사단=89년 유니세프 한국사무소의 첫 자원봉사자로 유니세프와 인연을 맺은 김금순(73.서울 돈암동) 할머니는 지금까지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전주여고 동창 네 명과 함께 봉사인생을 시작했다. 그동안 개인 사정으로 두 명은 그만뒀지만 신용인.최경순 할머니는 김 할머니와 함께 18년째 유니세프를 꾸준히 지켜 왔다. 요즘엔 목요일마다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모금해 오는 동전을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할머니 봉사단 3인방"이라며 김 할머니는 웃었다.

유니세프뿐만이 아니다. 김 할머니는 서울대병원과 천주교 복지병원에서도 청소와 가제 접기, 어린이방 관리 등 봉사활동을 한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오히려 "봉사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며 즐거워했다.

◆ "연애보다 봉사" 스무 살 대학생="일하고 싶어요." 2004년 12월 고등학생 한 명이 무작정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찾아왔다. 당시 수능시험을 막 끝낸 박경환(20)씨였다. 이후 박씨는 동전 분류부터 홍보.모금 활동까지 각종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유니세프의 일꾼이 됐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작한 봉사는 박씨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예전엔 열정도, 존재감도 없었는데 봉사를 하면서 삶에 임하는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중앙대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가 지난해부터 방학 때 복지관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도 시작했다. 학기 중에도, 방학 때도 봉사하느라 바빠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 박씨의 장래 희망은 가난에 시달리는 남미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국제지역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한애란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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