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성역 없어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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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서특혜」의혹이 걷잡 을수 없이 증폭되자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여론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가 검찰권의 발동을 주저해온 속셈을 국민들은 모르는 바 아니다.
사건의 성격이 청와대까지 관련된 행정부와 국회및 정치인이 부동산재벌과 함께 빚은 권력형의 총체적 부조리인데다 원칙에 입각한 수사를 할 경우 엄청난 파장이 뒤따를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범법행위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처럼 검찰권 발동을 미루고 있는 동안 사건 연루자들은 서로가 발뺌에 급급하는 추태를 연출했다. 마침내 국민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및 정치권에 대한 환멸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통치권 자체를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인지된 사건을 두고도 이처럼 이 눈치 저 눈치 보아 오다 여론에 떼밀려 칼을 뽑는 검찰을 보면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출발부터가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기회가 검찰로서는 수사의 공정성을,그리고 6공정부로서는 공권력 행사의 신뢰성을 시험당하는 엄숙한 기회임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이번에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사건을 매듭지어야 한다.
가령 이번 사건과 연루된 의혹이 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수사원칙에 따라 소환조사돼야 하며 형사처벌 또한 엄격해야 한다.
행여 정치권의 외압에 눌려 적당히 넘기려다가는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고 더 큰 파문을 몰아 올 것이다.
이번 사건은 5공을 뒤흔든 장영자 거액어음부도사건에 못지 않은 의혹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적당히 넘기려다 정권의 존립자체를 위협당했던 교훈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로 통제된 당시에도 그랬거늘 지금 그같은 전철을 밟으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의 노력에 더해 정권전체,그리고 관련 야당도 뒷받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6공정권이 총체적 파국으로 연결될지도 모를 권력형비리의 구조적 악순환을 명명백백하게 척결하는 일만이 정권과 나아가서는 제도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미진한 수사로 또 다른 의혹의 불씨를 남길 때 정권 자체의 도덕성은 의심받게 되고,수습의 길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다.
공교롭게도 수사의 범위가 청와대에까지 미친 이번 사건 지휘를 청와대 출신 검찰총장이 맡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검찰로서는 검찰권 행사의 입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또 다른 시험대를 맞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떻든 2년 임기의 초반에 예가 드문 큰 사건을 맡은 검찰총장으로서는 이번 사건의 처리과정을 통해 검찰권이 국민의 신뢰를 받느냐,불신 당하느냐는 기로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본란에서 이미 지적한대로 범법행위에 대한 수사와 형사처벌만으로 이번의 의혹사건이 완전히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탈법적 특혜분양 자체가 철회돼야 하고,그같은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행정적 문책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검찰수사에 우리는 의혹 그 자체의 규명을 기대하고 상응하는 형사처벌로 법질서가 바로서기를 기대한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어떤 종류의 성역도 둬서는 의혹을 풀지 못할 뿐더러 우리 사회지도층 전체가 냉엄한 국민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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