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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최근 우리 연극 무대에는 1인극, 즉 모노 드라마라는 형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는 주로 지명도 높은 여배우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으며, 십중팔구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보통 연극보다 1인극에 유독 관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우리 시대의 1인극들은 그만한 작품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공연되고 있는 김지숙의 1인극 『로젤』(대학로소극장·28일까지)은 그러한 의문들을 신중히 되짚어 보게 한다.
하랄트 뮐러작, 최강지 연출의 이 작품은 로젤이라는 여인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을충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형식은 로젤이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두곳의 술집을 전전하며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회고조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로젤, 그녀는 원래 바이얼리니스트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쳐 직업학교를 다닌후 한 호텔에 취직하여 첫 사랑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녀의 역경이 시작된다.
첫 남자는 지독한 바람둥이어서 그녀를 배반했고, 두번째 남자는 임신까지한 그녀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괴벽투성이의 세번째 남자로부터는 변태성욕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고, 고시생을 사칭한 네번째 남자를 공부시키기 위해 매춘행위까지 서슴지 않았으나 그 남자의 동료들로부터 윤간당한채 부녀 보호소로 넘겨져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여성들을 함부로 농락하고 멋대로 유린하는 남성들의 봉건적·권위주의적·가부장적 횡포를 극단적으로 확대시켜 성토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한 남성들을 끌어들여 연극을 온통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성적 묘사들로 채워놓고 있다.
남자가 바뀔때마다 새로운 흥분과 점점 더 큰 엑스터시로 치닫는 섹스의 과정들. 남편의 친구가 코바늘을 가지고 달려드는 낙태수술, 12명의 남자에 의한 집단 윤간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는 로젤이 직업전선에서 당하는 남녀불평등의 수모가 한두번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본질적으로 단한번도 심각하게 갈등하고 반항하거나 투쟁하지 않는다.
그녀는 번번이 너무 쉽게 사랑하고 무조건 복종하며 알콜의 힘으로 형편없이 망가져가는자신을 마비시킨다.
물론 김지숙의 연기는 15년동안 연극에만 전념해온 배우답게 아름답고 열정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에 마음껏 갈채를 보내기에는 이러한 이유들로 안타깝고 씁쓸하다.
연출면에서도 술집 분위기의 변화, 거리, 자동차 내부의 상황 등이 그럴싸하게 구현되지 못했다.
가상된 상대를 향한 표정과 몸짓에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우리의 1인극들은 제작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배우의 유명세를 통해 관객을 쉽게 동원할 수 있다는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지는 않든가.
배우들은 혼자무대를 독점한다는 마력에 이끌려 천박한 에로티시즘이나 값싼 센티멘털리즘을 상품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관객들은 마치 스타들의 장기자랑을 보는 심리로 1인극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가 한번쯤 심각하게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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