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법 협상(정치와 돈: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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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식자금 대부분 “거여독식”/평민선 뇌물외유 계기 「지분늘리기」 안간힘/국고보조금 인상안은 비난받을까 망설여
지난 1월19일 노태우 대통령과의 여야영수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전례없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노대통령과 양당 협조하에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용해 나가기로 했다』며 『특히 노대통령은 정치자금을 야당도 자유롭게 조성할 수 있도록 개선조치를 강구해보자는 얘기를 하더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3일 뒤인 22일 상공위 세 의원의 뇌물성 외유사건이 터지자 이를 청와대주도하에 안기부·검찰이 지자제선거등을 앞두고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사단을 벌인 것이라고 평민당은 주장하고 있다.
김총재는 이날 오후 즉각 정부쪽의 「음모」며 격렬히 성토했으나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을 수용,비공개 당직자회의에서 『겸허·자숙하는 자세로 임하자』고 하루만에 선회했다.
김총재는 뇌물사건에 대해서는 자성태도→국조권발동·전면수사촉구의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 민자당과의 정치자금법 협상을 강화하라고 김영배 총무·김봉호 사무총장에 지시했다.
여론과 위축된 정치권의 분위기때문에 여야는 아직 공식적인 정치자금협상을 벌이지는 못하고 있으나 민자·평민 양당의 총무·총장선에선 막후 절충이 진행중이며,민주당도 양당의 자금독식 위험성을 경계하고 어떻게든 협상테이블에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자당의 1개 지구당 운영경비밖에 안되는 월3천만원 조달도 어려워 헉헉대는 신생 민중당은 이우재 상임대표와 이재오 사무차장이 직접 여야 총장을 찾아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고 이대표는 김대중총재를 만나 배려를 호소할 방침이다.
현재 정치자금법등에 의해 공식적·공개적으로 각 당에 배분되는 자금은 민자당에 독점적으로 편중돼 있는게 사실.
특히 평민당은 4당시대의 「행복한 시절」과 달리 거여합당후 기업등의 비공식 정치헌금이 대폭 준데다 간헐적으로 펼쳐지는 사정정국때문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라고 죽는 소리를 한다.
정직하게 표현하면 민자당이 독식하고 있는 돈을 좀 나눠쓰고 가능하면 정치권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규모를 최대로 늘려 보자는게 평민당 정치자금 협상의 기본방침이다.
각 당의 정치자금은 크게 ▲기탁금 ▲국고보조금 ▲후원회모금의 세갈래.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90년도 10월말까지 선관위에 접수된 기탁금은 1백17억2천8백만원. 기탁금은 자금법상 정당지정기탁과 비지정기탁을 다 할 수 있게 돼있는데 실제로는 전액이 민자당 지정기탁이어서 야당은 한푼도 받아가지 못했다.
국고보조금은 유권자 1인당 4백원씩 쳐 2천5백만명 상당의 1백4억7천9백28만원이 작년 한햇동안 각 당에 분배됐다.
보조금배분은 4당시절에 만들어진 정치자금법규정에 따라 민자당에 약 69억원,평민당에 약 27억원,민주당에 약 8억원,한겨레민주당에 약 5천만원이 지급됐다.
이는 ▲보조금전체의 40%는 원내 제4당까지 일률 10%씩 기본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의 50%는 총선참가 정당의 원내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하며 ▲그 나머지는 의석여부에 관계없이 총선참여정당의 득표수비율에 따라 나눠준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민자당의 민정·공화계는 합당으로 인해 정당기본금 10%를 포기했고 민주당은 엄연한 원내 제3당으로 구민주당이 받던 기본금을 계속받았으며 한겨레민주당은 정치적으로는 해체됐지만 선관위등록이 유효하므로 서류상 대표인 제정구씨가 짭짤하게 보조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일단 이번 임시국회중 자금법개정을 한다는 방침을 여야가 합의했지만 민자·평민 사이의 이해가 제로섬게임식이 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선 평민당은 정치자금기탁을 기명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무기명기탁이 가능하게돼 있는 현행 규정에 따라 기탁자와 집권여당의 유착 및 독점배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자본주의 경쟁논리상 한 기업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특정정당에 법적보호를 받으며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는 논리로 이를 반박하고 있다.
정순덕 사무총장은 최근 비공개 당무회의에서 『선관위 지정기탁금은 사실상 우리당 재정위원들이 전액 기탁한 것으로 민자당 당비의 성격』이라고 실토하고 『이를 평민당이 나눠갖자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실상을 밝혔다.
현재 민자당 재정위원은 D증권·L토건·D수산회사 등 75개 중견·대기업 대표가 자연인으로 가입돼 연 1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선관위의 지정기탁형태로 손비처리받으며 「당비」를 내고 있다.
평민당의 『양당체제로 바뀐 만큼 원내교섭단체를 갖는 정당에 기본금 비율을 더 높여 지급하자』는 주장엔 민자당도 반대는 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기본금대상에서 제외되는 민주당은 치명적 타격을 보게 된다.
양당은 또 현재 유권자 1인당 4백원씩 돼있는 국고보조금을 1천원 정도로 대폭 올리자는 안을 협상하고 있으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민중당은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모두에는 지구당수 비율대로 국고보조금중 일부가 지급될 수 있게 하자』고 양당 간부들에게 사정하고 있는데 민중당의 요구액수가 거대여야로서는 미미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수용하겠다는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 불신때문에 소리없이 진행되는 정치자금법 협상은 개선 불가피성이 인정되면서도 협상결과에 따라서는 세비인상과 같이 또 한번 호된 여론의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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