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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다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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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내에도 곧 개봉하는 '대통령의 죽음'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시카고 경제포럼 참석 중 암살된다는 내용이다. 현직 대통령 암살이라는 충격적 설정이 논란을 빚었지만 2006 토론토 영화제는 국제비평가상의 영예를 안겼다.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는 평과 함께다. 물론 미국 개봉은 순조롭지 않았다. 2대 멀티플렉스가 상영을 거부하고 CNN 등이 광고를 거부해 소규모 단기 개봉에 그쳤다.

영국의 신예 가브리엘 레인저 감독의 이 영화는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가짜 다큐,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다.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고도 불린다. 감독은 실제 시카고를 찾았던 부시의 자료 화면에 맞추어 총격 장면 등을 연출해 덧붙였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시위대는 거친 질감의 흔들리는 영상으로 찍혔다.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이 촬영한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FBI 국장, 신문기자, 용의자 등은 시사 다큐의 관습대로 '인터뷰 연기'를 한다. 실제와 가상 인물, 실제 기록 화면과 연출 화면이 뒤엉켜 관객은 시종 진위의 경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다.

페이크 다큐의 출발은 다큐의 어법 자체를 비트는 일종의 '장르 패러디'다. 사실 같지만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연출이라고, 카메라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카메라 속 원재료만큼은 실재라고 믿는 객관성의 신화를 조롱하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은 영화사(史)의 주요 사건들을 비트는 페이크 다큐 '포가튼 실버'로 일대 소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1999년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독립영화 '블레어 위치'의 성공은 페이크 다큐 형식과 마케팅을 일반 상업영화까지 퍼뜨렸다. 전설 속 마녀를 찾아 숲으로 떠난 3명의 영화 학도가 실종됐다는 이 '거짓말 영화'는 제작비의 40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고 감독과 제작자를 스타덤에 올렸다.

페이크 다큐는 이처럼 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 다큐와 극, 실체와 가상(이미지)의 경계를 묻는 장르다. 현대 예술사진 중 일상의 한순간을 자연스레 포착한 스냅사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꾸며진 '연출사진(메이킹 포토)'과도 맥을 같이한다. 다분히 선동적 접근이지만 '대통령의 죽음'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페이크 다큐는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 혹은 과연 진실은 있는가를 묻는 포스트 모던한 텍스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