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난제' 푸는 미국의 원로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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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이라크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의 원로 10명이 지혜를 모았다.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 5명씩으로 이뤄진 이라크연구그룹(ISG)이다. 이라크 난제를 당파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푸는 것이 미국의 국익과 이라크의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지 고민해 온 사람들이다.

ISG는 미 의회 평화연구소의 특별위원회로 3월 출범했다. 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의 공화당 고위 인사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민주당 인맥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9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연구한 보고서(사진)를 6일(현지시간) 내놓았다.

◆ 국익이 우선=첨예한 당파적 이익이 걸려 있는 이라크 정책을 두고 만장일치의 보고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국익 앞에선 서로 한 발짝 물러서 타협하려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측 공동위원장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민주당 측 공동위원장인 리 해밀턴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외교정책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실용주의자란 공통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SG 위원인 리언 패네타 전 클린턴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밀턴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당파적인 논쟁에 휘말릴 때 그걸 넘어서는 대안을 내놓곤 했다"고 말했다. 공화당 측 위원인 앨런 심슨 전 상원의원은 "두 위원장은 서로 믿고 존경하며, 외교정책에 합의가 필요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지도자들"이라고 평가했다.

9.11 테러 조사위원회에서도 활동한 해밀턴은 "우리는 토의하고 토의하고 또 토의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도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나에게 알려 달라고 상대방에게 말했다"며 협상의 비결을 털어놓았다. 미국은 국가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초당적인 기구가 나서 거국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정치권은 당파를 초월한 제안들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 왔다. 9.11 테러 조사위원회도 그런 사례다.

◆ 이라크 해법 실마리 기대=ISG는 이번 보고서가 안으로는 국론 분열을 치유하고 이라크 국민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해법은 중동의 여러 가지 갈등 요인을 심도 있게 검토함으로써 이라크 문제의 본질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이라크 정책에 대해 언론과 야당에서 비판을 받아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일 ISG 위원들과 백악관에서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보고서가 이라크 상황을 아주 혹독하게 평가하고 있지만 매우 흥미 있는 제안이다. 모든 내용을 진지하게 검토해 적절하게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라크 정부도 보고서의 일부 내용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 보고서를 계기로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라크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부시 권고안 수용할까=부시 대통령은 7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ISG의 보고서에 대해 어떤 의견을 주고받을지 주목되고 있다. 부시는 시리아.이란과의 협상 등에는 다소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라크전에 대한 비판이 거세져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부시 대통령이 민심을 거스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심을 담고 있는 ISG의 권고안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003년 이라크전을 주도한 또 다른 한 축인 블레어 총리도 강경 일변도의 이라크 정책 수정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 한국을 이라크 지원그룹에 넣어야=ISG 보고서는 ▶2008년 초까지 전투병력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킨다는 목표 아래 미군 역할을 전투에서 지원 위주로 전환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한 이란.시리아 등과의 대화▶이라크와 중동사태 해결을 위한 새롭고 강화된 외교.정치적 노력▶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ISG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이라크 지원 참여와 주한 미 지상군의 적절한 병력 유지를 제안했다.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 특사 임명 등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지원그룹(IISG)을 즉각 조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한국.독일.일본 등 이라크의 정치.외교.안보 해결에 기여할 용의가 있는 나라들이 회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보고서는 "IISG에는 이란.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과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와 함께 "유엔 사무총장실도 IISG에 참여시켜야 한다"며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를 지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서울=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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