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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선제공격' 입장 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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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러시아가 유엔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다른 나라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으므로 러시아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테러 위협이 있을 경우 선제 공격해 위험을 제거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조지 W 부시 독트린'은 자칫 국제 정치무대에서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아 국제사회에 커다란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일 다른 나라가 유엔의 승인 없이 무력을 사용할 경우 러시아도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푸틴은 6일로 예정된 러시아.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위해 로마로 가기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이탈리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무력을 사용할 때는 유엔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러시아의 원칙적 입장임을 재확인하면서도 "만약 예방적 무력 사용이 국제적 관행이 된다면 러시아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또 "현재 모든 핵 보유국은 자신의 핵 기술 수준을 높이고 있으며 러시아도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핵 정책은 소련과 달리 어느 누구도 겨냥하지 않고 단지 우리 안보를 강화하는 데만 신경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의 이날 발언은 자신과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의 지난달 발언을 되풀이한 것이다. 당시 푸틴은 선제 공격 가능성 발언과 함께 "그동안 실전 배치되지 않아 미국과의 전략 핵무기 감축 협상 대상에서 빠졌던 SS-19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은 특히 "SS-19 대륙 간 탄도미사일이 향후 수십년간 어떠한 미사일 방어망도 손쉽게 뚫을 수 있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망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선제 공격 가능성'발언은 핵 공격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게 러시아의 입장이다. 지난달 9일 이바노프 국방장관은 미국에서 "러시아가 핵 선제 공격 전략을 채택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여전히 핵무기를 정치적 억지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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