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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칼럼

'실버 쓰나미'가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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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최대의 고령자 고용 알선기관인 '익스피리언스 웍스(Experience Works)'는 매년 풀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미국 근로자 가운데 최고령자를 발굴해 상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 수상자인 맥버니 할아버지는 캔자스에서 양봉업을 합니다. 100개가 넘는 벌통을 직접 돌보며 판매까지 도맡아 하다 보니 하루해가 짧다고 합니다.

맥버니 씨는 65세가 되던 해 육상을 시작해 지금도 10마일(16km) 정도는 거뜬히 달릴 수 있습니다. 고령자 올림픽에 출전해 오래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내가 맞은 첫 100살'이란 책에서 그는 긍정적 사고와 즐거운 생활을 장수 비결로 꼽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일을 하면서,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꿈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맥버니 할아버지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평균수명과 함께 건강수명이 늘어나면서 마음만 아니라 몸도 청춘인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 급증하고 있는 건강한 노인들에 대한 일자리 대책은 선진 각국의 고민거리입니다.

캐다나 온타리오주에 이어 브리티시 컬럼비아주가 최근 정년퇴직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곧 닥칠 '실버 쓰나미'를 생각할 때 노령인구의 경제.사회활동을 제한하는 정년퇴직 제도를 폐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고든 캠벨 주지사의 설명입니다. 장기적인 노동력 부족과 사회보장예산 부담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치라는 겁니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습니다. 2013년에는 65세로 더 늘어납니다. 미국은 고용차별금지법에 따라 아예 정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영국은 65세 미만의 정년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연령차별로 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비중 7% 이상)에서 고령 사회(14% 이상)로 진입하는 데 24년,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이행하는 데 12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각각 18년과 8년밖에 안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오정''오륙도'에 '이태백'이란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노인들 일자리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도 물론 있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15~24세)의 고민거리 중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6.9%에서 올해는 29.6%로 급증했습니다. 그 정도로 취업난이 심각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더라도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당한 차별일뿐더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익스피리언스 웍스'의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관은 연방정부의 '고령자 지역사회 고용 프로그램(SCSEP)'과 연계해 매년 수십만 명의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있습니다. 보조교사, 구급요원, 간병인, 조무사, 도서관 보조사서, 집수리공, 환경미화원 등 작지만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자리들입니다. 노인들은 주당 20시간 이상 일을 하고, 최저임금을 받습니다. 지역사회의 공적.사적 서비스 수요와 건강한 노인들의 근로의욕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실버 쓰나미'는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노인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줌으로써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공동체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