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역사적 사명 있다”/페만전 부시 결단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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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결심하면 꼭 끝장보는 성격/국제연대 고려 “늦출 수 없다” 판단
지난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에 돌아온 후부터 부시 미 대통령은 전쟁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부터 매주 주말을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보내고 돌아오면 즉시 안보관계자의 회의를 소집,백악관내의 사무실이 아닌 자신의 거실에서 주말동안 진전된 배치현황·군사작전 등을 일일이 점검했다는 것이다.
수누누 백악관비서실장은 부시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무슨 일이든지 끝마무리를 보아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부시가 전쟁을 어떻게 결심하게 됐는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나 그의 성격과 인생경험,그리고 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객관적인 상황으로는 부시는 시간을 끌수록 국제사회의 연대가 점점 약해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유리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즉 이라크가 보관중이던 화학무기를 현장에 배치하는 중이라는 최신의 정보가 입수된지 24시간도 안되어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시가 전쟁을 택한데는 그의 성격이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로서는 사담 후세인에게 전화 한통화만이라도 한다면 혹시 외교적 타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선택이 있었는데 결국 이를 택하지 않았다.
부시는 처음부터 외교적 선택에 여지를 두지 않았다.
『스스로 철수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소위 항복이냐,전쟁이냐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는 부시가 사담 후세인을 히틀러와 비유했던데서도 나타나듯 그를 하나의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물리치는 것이 정의라는 소위 흑백사고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인생경험과도 연결되어있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히틀러에게 전쟁을 선포했던 당시 감명받았으며 18세라는 어린나이에 소위 「선한 전쟁」을 위해 해군조종사로 지원했다.
그는 이번 이라크와의 전쟁도 악에 대항하는 「선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선뜻 결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전쟁도 하나의 외교적 수단이라는 생각이 철저하다.
부시는 88년 외교정책에 관한 한 연설에서 『전쟁은 그 역사적 사명이 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 나치독재를 타도했으며 전쟁의 폐허에서 새 세계질서를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성격 역시 전쟁결심을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부시의 측근은 부시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지적인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며 이번 결심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단호하고 무서운 면을 지니고 있다고도 하고 있다.
지난번 파나마침공을 보더라도 일단 결심을 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번 쿠웨이트 사태기간중에도 행정부의 어느 누구보다도 부시가 조바심하며 사태를 끌고 왔다는 것이다.
그의 한 고위측근은 이라크에 경제제재조치를 취하고 유엔의 결의를 받아냈을때도 부시는 『다음 조치는 무어냐』고 다그쳤다고 소개하면서 부시는 측근들에게 항상 『결코 시간이 우리편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월남전의 책임을 지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임을 못하고 불명예퇴진한 사실이 항상 뇌리에 있어 이번 전쟁이 『결코 월남전 재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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