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실전논술] 고전은 논술의 힘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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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반세기 동안 서울의 땅값은 무려 4만 배나 올랐다. 또 우리나라 토지 가격의 총액은 프랑스를 여덟 번 사고도 남는다. 정부 자료는 땅부자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57%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투기로 집값 상승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토지 소유 편중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요즘 주목해야 할 학자가 있다.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1839~97)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영세한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14세에 선원 생활을 시작해 인쇄공과 광원, 관청 직원, 기자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대표 저작 '진보와 빈곤'은 당시 성경을 빼면 논픽션 가운데 가장 많이 보급된 책이다.

그가 책을 쓰기 시작한 1877년 미국은 불황기였다. 대규모 파업과 폭동, 가뭄까지 겹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 때 뉴욕에서도 극도의 사치와 빈곤이 공존하는 현상에 충격을 받은 그는 사회가 진보하는데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해결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부자 부모를 만나 좋은 땅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자가 되는 현실이 바로 '진보와 빈곤'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그는 경제 불황의 이유를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는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봤다. 결국 그는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치가 아니라 사회 상황이 창출한 가치가 토지 소유자에게 독점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토지 사용의 대가인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단일세(land only tax)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땅에서 파생되는 불로소득을 몽땅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이었다. 대신 농부가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며, 노동이 생산한 가치에 세금을 물리는 기존의 조세 체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토지단일세를 도입해 땅 투기가 사라지면 지대가 내려가고 하락분만큼 임금이 상승하며, 나아가 환수된 지대가 사회 전반에 재분배되면 그만큼 빈곤도 축소된다고 봤다.

또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지대 수입이 늘어나므로 국가 재정이 풍부해지고, 생산 활동에 부과되던 다른 조세가 감면되므로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크게 증대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토지 이론은 숱한 비판에도 영국과 아일랜드의 토지 개혁 운동뿐 아니라, 중화민국 설립자 쑨원(1866~1925)에게도 영향을 미쳐 민생주의의 바탕을 제공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1828~1910)도 세상이 그의 토지사상을 알게 된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제 강화를 통한 투기 이익을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도 크게 보면 그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내용이 우리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전문가들의 의견 교환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김보일(배문고 교사·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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