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라디오 프로그램·여성잡지 등이 대선 예비주자들의 아내들에 관심을 쏟고 있다. 각주 없이는 알아듣기 힘든 각종 정책을 내놓기 바쁜 예비 대선 주자들이 여의도발 '아내 사랑'을 앞다퉈 공개하면서 대중매체들의 초점이 '내조 일선'으로 옮겨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1700만여명의 여성유권자를 조준한 시동", "낮아지는 선거 연령을 고려한 젊은 세대와 소통", "감성이미지로 외곽부터 조이기", "2002년 대선때 노대통령 화법의 학습효과" 등으로 진단한다. 아내와 표심은 어떤 함수 관계에 있는걸까.
▶(좌부터)조현숙ㆍ인재근ㆍ이윤영ㆍ민혜경ㆍ김윤옥씨
◇대선주자의 '아내 사랑' 표현도 갖가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달 17일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 출연, 채식으로 짜인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난 마누라 없으면 시체"라면서 부인(이윤영) 내조가 건강 유지의 '버팀목'이라고 자랑했다. 지난해 '베스트드레서상'을 받으면서 "아내가 골라주는 옷만 입는다"고 밝혔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우리 부부의 권한은 5대5로 동등한 부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싫증내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4일 한 방송에서 그는 시장 퇴임 후 입주한 서울 가회동 한옥 자택에는 '이명박-김윤옥' 공동문패가 걸려 있다고 소개했다. 올 초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청년시절부터 함께 인권운동을 펼쳤던 부인(인재근)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 길을 갈 수 있겠소. 내가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 당신은 최고의 아내이자 진실한 동지였소. 사랑하오"라고 말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지난 6월 '열린우리당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여러분의 휴대폰 번호 1번은 누구입니까? 남편 휴대폰의 1번은 사랑하는 아내일 것입니다"라며 부인(민혜경)과의 애정을 과시했다. 고건 전 총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아내(조현숙)의 고교시절 사진을 올려놓으며 "나는 지금도 그녀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습니다"고 고백했다.
◇1700만 여성유권자, '아내사랑' 표심으로 직결
투표권자의 50%에 해당하는 1700만의 여성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이들에게 '아내 사랑'은 바로 표심으로 직결된다. 50대 이상의 여성유권자에게는 '조강지처와 함께한' 이미지를, 20 ̄40대 여성유권자에게는 '닭살스러운 신세대'의 이미지를 '아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한 표를 던졌을 때 학연.지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만큼 노력 여하에 따라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숙명여대 이남영 교수(정치학)는 "정치는 남성의 고유영역이라는 심리적 벽이 없어지면서 여성의 파워가 사회적.제도적.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여권 신장.교육의 진동과 더불어 성장한 1700만여명의 여성유권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큰 표시장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장인이 좌익했다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학습효과
정치권에서 '아내 사랑'의 컨셉이 본격 등장한 것은 2002년 대선 때부터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16대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의원이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대통령 장인의 빨치산 활동'으로 공격하자 노 후보는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로 대세를 역전시켰다. 김희선 당시 민주당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노 후보와 권양숙 여사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공개되면 여성들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당시 노 후보는 대통령감으로서 자질이 부족했는데 아내와 가족, 눈물을 내세운 감성형 어법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이는 지금 대선주자들에게 학습효과를 불러일으켜 자신들의 부족한 영역을 감성으로 메우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사랑' 전략은 2004년 미국 대선전에서도 사용됐었다.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 맞붙었을 때 부시 선거캠프는 조지 W 부시의 'W'가 여성(Women)을 의미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이를 위해 부인 로라 부시와의 금슬을 유별나게 자랑했었다.
◇홍일점'박'은 어떻게
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