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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광화' 뜻 그대로 복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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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로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4일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마당. 오세훈 서울시장이 감격스럽게 말을 꺼냈다.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에서다.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옛 광화문을 허물고 새 광화문을 세우는 것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도 열렸다.

오 시장의 축사에 이어 광화문 용마루 취두(鷲頭.용마루의 양쪽 끝에 얹는 장식물) 두 점이 대형 크레인 두 대에 실려 바닥으로 내려졌다. 광화문의 본격 철거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광화문 복원은 일제가 준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이 되살아난다. 이날 해체식을 시작으로 2009년 말 '자기 얼굴'을 찾는다. 1395년 창건 이후 우리와 영욕과 함께했던 광화문의 재탄생,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제자리 찾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 세월 광화문은 숱한 고난을 겪었다. 고종 4년(1867년) 중건됐으나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신축되면서 '온몸'이 분해돼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강제 이주'됐다. 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문루가 사라졌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현재 위치로 옮겨졌으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까닭이다. 또 조선총독부 건물과 평행을 맞추다 보니 경복궁 중심축에서 동쪽으로 5.6도 틀어져 앉았고, 자리 또한 원래보다 북쪽으로 14.5m, 동쪽으로 10m 이동했다. 광화문 자체가 '반신 불구'가 된 셈이다.

새 광화문은 딱딱한 콘크리트를 벗고 국내산 육송(陸松)으로 단장된다. 비틀린 방향과 위치도 바로잡는다.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21세기의 광화문'으로 당당하게 서는 것이다. '청산과 반목'의 과거사 정리가 아닌 '미래와 화합'의 과거사 회복을,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도약을 알리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해체될 광화문의 주요 부재(部材)와 박정희 대통령이 쓴 현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는 것도 긍정적이다. 역사는 지우는 게 만사가 아닐 터. 사실 콘크리트 광화문도 건축 전문가 사이에서 '잘 지은 건물'로 평가됐었다.

광화문의 '광화(光化)'는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중국 고전 '서경'(書經)의 '광피사표화급만방(光被四表化及萬方)'에서 따왔다. 지난 600년 우리와 함께 호흡해온 광화문에 거는 기대도 바로 이와 같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