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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장 정책으론 집값 못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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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는 8.31 대책을 비롯한 일곱 차례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등 집값 안정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게 됐는가. 정부가 그렇게 자신하던 부동산대책 효과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을 버티지 못했다.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뒤 일정기간이 지나면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해 나라 전체가 부동산 광풍에 휩싸이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강북지역과 지방, 그리고 중산서민층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

부동산시장도 '수요와 공급'이란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공급을 소홀히 하면서 세금과 규제로 부동산 수요를 막는 반(反)시장원리로 대응해 왔다. 그나마 정부의 수요억제 정책도 과도한 부동산 담보대출, 530조원에 달하는 단기성 자금, 지방 개발로 풀린 30조원의 보상금 등으로 구멍나 있었다. 이같이 공급이 막혀 있고 수요의 고삐가 풀린 부동산시장이 안정될 수 있겠는가.

지난달 초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이 동시에 폭등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는 11.15 부동산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11.15 대책이 이전 대책들과 다른 점은 공급 위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정책에서 공급을 강조하기까지는 3년9개월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정부의 공급대책은 아직도 50%가 부족한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11.15 부동산대책이 완전한 공급대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양도세 인하, 재건축 규제 완화,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지역에 중대형 아파트 적기 공급 등이 보완돼야 한다.

첫째, 기존 주택의 공급대책이 필요하다. 11.15 대책에 의하면 올해부터 2010년까지 7개 신도시 및 공공택지에서 87만 가구, 민간택지에서 77만 가구 등 총 164만 가구가 신규 공급된다. 그러나 신도시가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등 주거지역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공급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과중한 양도세가 기존 주택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주택공급의 50%를 차지하는 기존 주택의 거래를 늘리는 정책은 전무하다. 현재 250만에 이르는 다주택 가구가 약 800만 채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 다주택 가구가 가지고 있는 여분의 주택 550만 채를 처분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하면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둘째, 강남권에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강남권은 교육.교통.생활의 편의성 때문에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태다. 공급 위주의 11.15 대책에서도 집값 폭등의 진원지인 강남권 공급 대책은 빠졌다. 수요층이 원하는 강남권에선 정부가 양도세 강화로 기존 주택 공급을 막고, 재건축 규제로 신규 주택 공급마저 어렵게 해 놓은 상태에서 집값이 안정되기는 어렵다.

셋째, 건교부가 발표한 '검단 신도시 가구수 및 분양계획'에 따르면 국민주택 규모(25.7평)를 초과하는 가구 수는 28.6%에 불과하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수도권 중대형 수요층인 40~54세 인구가 2023년까지 증가세에 있다. 여기에다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형편이 나아짐에 따라 중대형 고급 아파트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중대형의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 판교에 중소형과 임대 위주로 공급하다가 '판교발(發) 집값 폭등'을 부른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상근 명지전문대 겸임교수·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