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인터뷰

한국인 처음으로 국제로터리 회장에 뽑힌 이동건 부방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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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제로터리 회장은 민간 외교 최고봉의 하나다. 로터리의 주요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에 회장 출신국의 국기가 걸리고 국가도 연주된다. 전 세계 회원을 대표해 국제적 빈곤 퇴치, 질병 예방 등 로터리의 주요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교황과 각국 정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도 있다. 2008년 7월이 되면 이동건(68.사진) 부방 회장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자리에 오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재임 기간 중 로터리의 봉사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에는 로터리 조직이 없지만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을 지원하는 것도 로터리의 책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삼성동 부방테크론 본사 집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나 국제로터리 수장에 오른 소감과 계획을 미리 들어봤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로터리 회장으로 확정된 데 대한 감회는.

"한국인이 이런 거대 국제단체의 회장을 맡은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이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년이면 우리나라에 로터리클럽이 탄생한 지 80주년이 된다. 국내 회원 수는 5만1000여 명으로 미국.일본.인도에 이어 넷째로 많다. 우리나라는 (재정적) 기여도에선 미국.일본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 회원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차차기 회장에 당선된 것이라 믿고 있다."

-국제로터리 회장은 어떤 예우를 받나.

"미국 시카고 본부에 개인 사무실이 있고 인근에 있는 공관을 쓸 수 있다. 또 전 세계 로터리 회원은 회장이 정한 문장과 모토가 새겨진 배지를 단다. 미국 대통령 등 국가 정상들과 만날 기회도 적잖다."

-선거 때 어떤 공약을 했나.

"출마 공약은 할 수 없다. 출마 선언 외에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로터리는 순수 봉사단체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색을 배제한다. 지명위원들이 출마자의 성품과 행적 등을 검토해 회장을 뽑는다. 로터리 회원으로 평소 성실히 봉사하는 것만이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운동이다. 일전에 미국 로터리 회원 집에 하루 신세를 지게 돼 스카프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를 문제 삼은 지명위원이 있었다고 들었다. 일종의 뇌물 공세라는 것이다. 아시아 쪽 지명위원들이 잘 해명해 줘 무사히 넘어갔지만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회장 당선은 거의 불가능하다."

-차차기 회장의 지위와 역할은.

"내 회장 임기는 2008년 7월부터 1년간이다. 그러나 차차기 회장 확정 직후부터 국제로터리 본부가 있는 미국 시카고에 상주하면서 일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 임기는 2년6개월이라고 볼 수 있다. 차차기 회장은 차기 회장과 함께 현직 회장에게서 사업 방향을 익히며 이사회가 주문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차차기 회장을 미리 뽑는 것은 로터리 사업의 정체성에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다."

-회장의 주요 업무는 뭔가.

"국제대회와 이사회를 주재한다. 또 각국을 순방하면서 지구촌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일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로터리 회원 연수회에 참가해 봉사 의욕을 고취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봉사단체로서 국제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동안 로터리가 벌여 온 빈곤 문제 해결, 소아마비 퇴치, 문맹 극복, 물 부족 및 수인성 질병 예방 등의 사업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특히 로터리가 1985년부터 시작한 소아마비 퇴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매일 1000여 명씩 발병하던 소아마비 환자가 이제 연간 2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20여 년간 6억 달러를 들여 20억 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예방접종을 해준 결과다. 소아마비의 완전 퇴치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은 북한 돕기다. 한국인 회장이어서가 아니다. 북한의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아프리카의 극빈국인 나미비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연히 도와야 한다."

-북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나.

"로터리 봉사는 각국에 퍼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데 북한엔 로터리클럽이 없다. 중국만 해도 거주 외국인 중심으로 로터리클럽이 만들어져 있어 사업을 할 수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앞으로 회장 취임까지 1년여 기간이 남은 만큼 여러 국제기구와 로터리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의해 지원 방안을 찾을 것이다."

-로터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부산방직공업을 창업한 선친이 일찍이 부산 지역에서 로터리 활동을 했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71년 서울 한강클럽에 가입했다. 부산방직 상무로 서울에 파견돼 일을 할 때다. 부친은 처음엔 둘(부자.父子) 중 한 명은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며 반대했지만 회원이 되자 적극적으로 활동하라고 격려해 줬다."

-그동안 클럽 활동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10년 전 일본 로터리와 함께 경북 안동의 음성나환자촌 진입도로 포장 공사를 해준 적이 있다. 준공 기념식 때 마을 대표가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부탁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로터리가 스스로 찾아와 줬다'며 우는 모습을 보고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1월엔 소아마비 박멸 사업 자원봉사차 인도 비하르 주(인도 북동부의 네팔 인접 지역)에 갔었다. 소아마비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고통받는 부모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 자신도 탈수증까지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소아마비 박멸은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기업인이 국제로터리 회장을 맡은 적이 있나.

"물론이다. 로터리는 한 해 1억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받아 세계를 상대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다. 그동안 기업인들은 다양한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로터리 활동 반경을 넓혔다."

-국내 로터리 선배 중 귀감으로 여기는 분이 있다면.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로터리 국제이사를 지낸 송인상(한국능률협회 회장) 회장과 오재경 전 공보부 장관을 존경한다. 두 분은 89년 서울에서 로터리 국제대회가 처음 열렸을 때 각각 국제대회 위원장과 국내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로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송 회장은 95년 한국 로터리가 독립된 지대로 인정받고, 한국어가 국제로터리 공용어의 하나로 채택되도록 힘쓴 분이다."

-한국 로터리의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은.

"최근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 발전은 미흡한 것 같다. 내실을 다질 때다. 또 국제로터리를 이끌 지도자들을 많이 길러야 한다."

-2년여 동안 상근 기간 중 부방의 경영은 누가 맡게 되나. 요즘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데 영향이 없을까.

"부방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지 이미 오래다. 나는 90년대 중반부터 국제로터리 활동에 전념하면서 경영철학이나 기업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에 그친다. 지금의 경영진이 회사를 잘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 = 차진용 경제부문 차장
정리 = 임장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국제로터리는 …회원 120만 명 둔 세계 최대 민간 봉사단체

국제로터리는 203개국에 120여 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 민간 자원봉사단체다.

1905년 미국 시카고의 청년 변호사 폴 해리스가 재단사.석탄상.광산기사 등 세 명의 친구와 결성한 친목.봉사 모임으로 출발했다. '로터리'라는 이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의 사무실을 돌며 모임을 연 데서 유래됐다.

해외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12년 '국제로터리클럽협회'라는 이름을 쓰게 됐고, 22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초아(超我)의 봉사'를 기치로 내걸어 후진국의 위생.보건 환경 개선 활동, 빈곤.문맹.소아마비 퇴치 활동 등을 벌인다. 이를 위해 매년 1억 달러의 기금을 집행한다.

회원은 대부분 기업인 및 전문직 종사자다. 로터리의 기본조직은 클럽이다. 75개 클럽에서 2700여 명 이상의 회원이 모이면 지구로 격상된다. 15~16개의 지구를 한 단위로 묶은 게 지대다. 전 세계에 3만2000여 개의 클럽이 있고, 이는 530여 개 지구와 34개 지대로 나뉜다.

국제로터리 회장은 각 지대 대표 34명으로 구성된 세계 이사회 이사들 중 17명으로 구성된 차차기 회장 지명위원회에서 뽑는다. 지명위원회 투표에서 10표 이상을 받아야 회장에 당선된다. 10표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후보자의 자질과 품성 등에 대해 토론을 한다.

당선자가 나오면 두 달여간 이의제기 기간을 두고 이 기간 중 도전자가 나오지 않으면 차차기 회장으로 확정된다. 우리나라엔 27년 경성 로터리클럽이 처음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활동이 중단됐다가 49년 서울로터리클럽으로 재출범했다. 현재 1308개 클럽의 5만1000여 명의 회원이 나환자 및 심장병 어린이 치료 지원, 북한동포 돕기, 몽골 방풍림 조성사업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제100차 로터리 국제대회는 2009년 서울에서 열린다.

◆이동건 회장은 누구 …

이동건 부방 회장은 1938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을 양동마을에서 보낸 그는 부산 개성중학교를 거쳐 서울고와 연세대(정외과)를 다녔다.

대학 졸업 뒤 수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68년 부친(이원갑.89년 작고)이 창업한 부산방직공업에 입사해 가업을 이었다. 그가 로터리 클럽에 가입한 것은 부산 로터리지구 총재를 맡았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는 전기밥솥과 전자부품 등으로 부방의 사업을 다각화하는 등 경영과 봉사활동을 함께하다가 95년 지구 총재를 맡은 이후 회사 경영 일반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로터리 일에 전념했다.

총재 재직 당시 10개월 동안 국제로터리 전 세계 지구 중 가장 많은 1783명의 신규회원을 영입하면서 32개 클럽을 새로 만들었다.

2003년엔 국제로터리의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 관리위원에 올랐다.

해외 활동을 활발히 해 94년부터 주한 이탈리아 명예영사를 맡아 왔고 지난해부터 외교통상부의 국제친선담당 무임소 대사를 겸하고 있다. 부인 정영자(61)씨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임장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