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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 외국인 시대] 上. 불법 11만명 "일단 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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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외국인 노동자와 공존시대다. 고용 허가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국민의 1%에 육박하게 된다. 그러나 합법과 불법 체류의 선이 그어지면서 업체와 외국인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안정적 인력 공급에 활력을 띠는 업체도 있지만 일부는 숙련공들의 이탈로 조업 중단 위기에 놓여있다. 외국인도 '코리안 드림'과 강제 출국의 악몽이 교차한다. 문 열린 노동시장은 지금 과도기에 질서 재편을 위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국 동포 李모(43)씨. 그는 지난 3일 저녁 서울 구로구 가리봉시장에서 국제전화카드 10만원어치와 라면 10박스를 샀다. 잠적기간 중 필요한 물품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마감된 불법 체류 외국인 체류 확인 신청을 안했다. 1997년에 입국, 체류기간이 4년을 넘어 구제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귀국할 생각도 없다. 같은 처지인 동료 4명과 다음주 초부터 충북의 외딴 지역에서 두달여간 '동면'할 참이다. 이미 집도 봐 놨다. 그는 "두달 정도만 숨어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단 피하고 본 뒤 집중 단속기간이 끝날 내년 초께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다. 입국 4년 미만 외국인에 대한 체류 확인 신청 결과 대상자 22만7천여명 중 83.6%인 18만9천6백15명이 등록을 마쳤다. 나머지 3만7천여명은 불법 체류를 선택한 셈이다.

여기에 대부분 출국을 거부하고 있는 4년 이상 체류자 6만5천여명과 통계에 안 잡힌 밀입국자 1만여명(법무부 추산)을 합치면 불법 체류자는 11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오는 16일 시작될 당국의 합동단속을 피해 벌써부터 서울.경기지역의 일터를 떠나 속속 지방으로 숨어들고 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는 "정부의 단속 예고에 공단지역에서는 밤이면 짐을 싸들고 이리저리 이동하는 외국인이 눈에 많이 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S(25.여)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 취업 확인을 받을 수 없었다. 15일까지 다른 고용주를 못 찾으면 서울 이태원의 이슬람 성원으로 피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포들도 상당수가 인도적 차원의 보호를 호소하며 종교시설에 피신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출국하지 않고 '버티기'를 선택한 것은 과거처럼 이번에도 한국 정부가 단속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실제로 검거한 불법 체류자를 수용할 외국인 보호시설의 수용 능력은 1천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무부는 "고용허가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법 체류가 근절돼야 한다"며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 체류자를 현재의 10%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래야 건전하게 열린 노동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김정하.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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