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나카지마교수가 전망하는 「남북한 주변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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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외석학 신년 특별기고/“한반도 해빙… 중국이 변수”/아직은 「두개의 한국」선택 어려울듯/초조한 북한,일 이어 대만에도 “손짓”
90년은 한반도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한해였다.
말할 나위없이 지난해 9월30일의 한소 국교수립,12월14일의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에 의한 한소 공동선언,9월 하순 가네마루(금환신)의 방북으로 시작된 일­북한 국교정상화 움직임,그리고 10월20일의 한중 무역대표부 설치합의 등은 너무나도 중요한 아시아의 새로운 국제관계 형성이기도 했다.
그 사이 남북한 총리회담이 몇차례 계속 되었다는 사실도 잊을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동란 이래 사회주의 형제국으로서 서로 도와온 순치보거라 할 수 있을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88년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차례로 붕괴되기 시작했고 특히 동구가 이미 사회주의를 포기해버린 상황하에서 중국은 천안문사건 당시 반사회주의적 요소를 단호히 억압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정통성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경제관계는 “굳건”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유일한 우방으로서 북한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이 북한과 대립관계에 있는 한국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상한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원래 한중 관계는 83년 5월의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을 계기로 부각된 이래 아시아의 새로운 국제관계로서 주목을 받고있다.
특히 경제에 있어서는 89년 30억달러를 넘는 무역거래가 있었고,이 규모는 중국과 북한과의 무역을 크게 상회하는 액수가 되어있다.
즉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한중 관계는 이미 굵은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예를 들어 북경공항에 내리면 한국 유수재벌기업의 간판이나 광고물들이 곧 눈에 들어오며 한국에서 간 비즈니스맨들이 북경이나 상해에 많이 체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국의 상징적인 관계가 드디어 매우 현실적인 경제관계로 변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는 중국의 의도로서 다음 단계에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생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의 느낌으로는 당분간 중국은 준국교관계(무역대표부 설치 또는 사증업무 등의 영사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이상,이를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한다.
왜냐하면 국교가 수립될 경우 당연히 중국은 북한과의 단교 또는 소위 「두개의 한국」을 인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극히 보수적이고 완고한 사회주의를 국내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한,북한의 입장을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만약 중국이 소련과 같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추진,글라스노스트(개방)를 전개해 복수정당제를 실시하는 등 유연한 국내체제를 취할 수 있다면 한국과의 국교수립까지 발전될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소련과 한국은 그러한 상황으로 진전돼 왔던 것이다.
○북한 소에 불신감
그러나 같은 상황이 중국과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떨까하는 문제라면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희박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사회주의라는 틀을 지금과 같이 유지하는 한,김일성 숭배와 주체사상이란 특이체질이지만 사회주의를 단호히 표방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는 단절시킬 수 없는 것이 된다.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또하나의 대안은 「두개의 한국」정책이다.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수립할 경우 결과적으로 두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상황이 된다. 현재 북한은 이와 같은 정책전개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한국과 현재이상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위험부담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현재대로 준국교수립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국과의 경제·외교상의 현안을 처리하는 방법뿐이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소련에 단단히 얽혀있기 때문에 곤경에 빠져있다.
북한에 남아있는 바람은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만 현상을 유지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동구민주화 이후 소련조차도 사회주의의 개혁을 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식의 독재체제에 대한 혐오감도 깊어져 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소련이 마침내 평양의 의사를 무시하고 한국과 국교를 수립할 것이라는 각오는 북한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의 영향을 받아 소련이상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시키고 있는 몽골의 경우도 90년 3월 소련에 앞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북한은 몽골주재 외교관을 소환하지 않았다. 몽골은 현재 일종의 2중 승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점들을 살펴보면 곤경에 처한 북한은 종래의 「파이프라인」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일본·미국,심지어 대만 등과도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점은 대만과의 관계개선이다.
현재 대만은 1인당 GNP가 8천5백달러에 달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중국대륙보다 30배가 넘는 풍요로움을 보이고 있다.
리덩후이(이등휘) 총통체제하에서 정치개혁도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소련도 최근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만을 주목하기 시작,포포프 모스크바시장이 지난해 11월초 직접 대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포포프 시장의 방문을 계기로 대만은 향후 5년간에 걸쳐 총 60억달러 규모의 경제원조를 약속,양국간 관계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속에서 북한도 대만에 눈을 돌리기 시작,지난해 11월말 대만 입법의원들에게 최초로 비자를 발급,중요한 관계변화 의사를 보였다.
나 자신도 지난해 5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황장엽 조선사회과학자협회위원장겸 노동당 중앙위원회서기(전최고회의의장)를 비롯,북한의 지도급 인사들과 긴 회담을 가졌다.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후계자문제,북한의 루마니아화 가능성 등)를 포함,연일 연쇄회담을 가졌으나 결과적으로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 문제같은 사소한 문제만 해결됐을 뿐이다.
북한은 소련에 대해서는 매우 큰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 중국에 대해서는 그 영향하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북한이 일본·미국,나아가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방북한 일본의 가네마루 전부총리가 일­북한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게한 큰 역할을 수행해 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나의 「통일관문」
그러나 일­북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미 형성된 흐름을 무시한 채 전후 45년간을 포함,필요이상으로 일본의 한반도정책을 사죄해야 할 이유는 과연 있었을까 하는데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같이 생각하면 앞으로 남·북한이 독일과 같이 통일될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 과정에는 많은 단계가 있고,중국의 영향력은 당분간 한국과의 경제관계 강화라는 점에 국한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도 일 중 국교회복의 경우처럼 한국의 중국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큰 만큼 그 기대에 걸맞는 중국의 경제능력이 있을지 어떨지,즉 꿈을 깨고 환상이 사라진 다음에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더불어 만일 중국이 한국과 그 이상의 관계를 강화시키게 된다면 북한은 더욱 독자적인 외교자세를 일관시키게 될 것이므로 이 점이 한반도통일을 향한 하나의 관문이 될 것이다.
□약력 및 저서<나카지마 미네오 교수>
▲35년 마쓰모토(송본)시 출생 ▲60년 동경외대 중국어과졸 ▲65년 국제학박사(동경대 국제관계론) ▲66년 동경외대 조교,강사,조교수를 거쳐 77년 교수 ▲69년∼71년 외무성 특별연구원(재홍콩) ▲77년∼78년 호주국립대 현대중국센터 객원교수 ▲80년 「중소 대립과 현대」로 사회학박사(동경대) ▲현재 동경외대 교수겸 동대학 해외사정연구소장
◇주요저서:『현대중국론』(청목서점·64년),『북경열렬』(81년·산토리 학예상 수상),『중국의 비극』(89년)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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