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안구 건조증을 유발하는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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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약 때문에 눈이 건조할 때가 있다. 눈물이 부족하게 만들어지거나 눈물이 양적으로는 충분하더라도 구성 성분에 문제가 생겨서 불편한 상태를 안구건조증이라고 부른다. 눈이 뻑뻑하거나 이물감, 눈부심, 건조감, 눈의 피로가 심해져서 괴로움을 준다. 약은 눈물이 분비되는 양을 줄이기도 하고 눈물의 구성 성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여드름이 심할 때 먹는 약으로 사용하는 이소트레티노인은 피지 분비를 줄여주지만 동시에 마이봄샘에서 기름을 분비하는 것도 방해한다. 마이봄샘에서 기름의 분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눈물이 쉽게 마르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진다. 손이 건조할 때 물만 발라서는 소용이 없고 유분이 충분한 보습제를 발라줘야 피부가 촉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물막도 기름층이 덮어줘야 안구를 부드럽게 감싸줄 수 있다.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여드름 약을 복용 중일 때는 낮에 인공눈물, 자기 전에 점안겔, 안연고를 사용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약은 눈물이 분비되는 양을 줄이기도 하고 눈물의 구성성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중앙포토]

약은 눈물이 분비되는 양을 줄이기도 하고 눈물의 구성성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중앙포토]

코감기약, 알레르기 비염약도 눈의 건조감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들 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는 점액질 분비를 줄여준다. 눈물, 콧물이 줄어들면 비염이나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부작용이 된다. 코막힘을 줄여주는 비충혈제거약 성분에도 눈물이 더 적게 만들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콧속 점막혈관이 수축되면 콧물이 더 적게 만들어지고 코막힘이 줄어든다. 하지만 같은 원리로 눈물도 더 적게 만들어진다. 먹는 약뿐만 아니라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에도 비충혈제거약이 들어있다. 이런 약 성분이 코에만 가만히 머물면 좋으련만 눈 주변으로도 가고 심지어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로도 간다. 이로 인해 비염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서 안구건조증이나 두통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염이나 감기 약은 불편감을 줄여주는 약이고 원인을 치료하는 약은 아니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약 사용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안약도 마찬가지로 눈을 건조하게 만들 수 있다. 안약 속 소염진통제, 혈관수축제와 같은 다양한 약 성분이 눈물의 양이나 조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구건조증과 관련된 약은 그 밖에도 많다. 혈압약, 소염진통제, 아편계 진통제, 항우울제, 항암제, 진정제, 피임약이 눈을 더 건조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기억할 점이 있다. 우선 혈압약이라고 해서 모든 약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베타차단제와 같은 일부 약 성분이 안구건조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훨씬 더 자주 사용하는 혈압약 성분(ARB)에는 그런 부작용이 거의 없다. 또한 안구 건조 부작용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 부작용이 의심될 때는 가까운 병·의원, 약국에서 상담받길 권한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