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지갑 안 여는데…60대 신차 구매량 19% 늘었다 [860만 영시니어가 온다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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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강남의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매장. 뉴스1

서울 강남의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매장. 뉴스1

산업계는 만 55~64세(1960년~69년생) ‘영시니어’를 새로운 고객군으로 주목하고 있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이들 86세대는 젊고 활력 넘치며 구매력까지 갖춘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겨냥해 중대형급 신차를 내놓는 등 관련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30·40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반면 50·60대의 신차 수요는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신차 중 30·40대 대상 판매량은 1년 전보다 각각 2.9%, 2.7% 느는 데 그쳤지만, 50대의 구매량은 전년보다 12.4%, 60대는 19.7% 증가했다.

정지윤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고물가로 MZ세대 사이에서 무(無)지출 챌린지, 짠테크 열풍 등 극단적 절약 문화가 퍼지면서 소비 여력 있는 은퇴 전후의 86세대가 기업의 시선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알지만 모르는 시니어 시장

구리 유채꽃축제가 열린 지난 10일, 경기 구리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옛 교복을 입고 노랗게 핀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구리 유채꽃축제가 열린 지난 10일, 경기 구리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옛 교복을 입고 노랗게 핀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한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기업들이 은퇴 세대를 주 소비층으로 주목한지는 오래 됐다. 하지만 이들을 겨냥한 제품은 통신사 실버 요금제, 두유나 연화식, 단백질 음료 같은 건강식 등 일부에 국한돼 있었다.

『60년대생이 온다』의 저자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기업들이 ‘시니어 시장’을 오해한 탓에 관련 시장이 크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기업이 공급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요양·의료기기, 주거, 식품·의약품 등으로 분류되는 전통적인 시니어 비즈니스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앞으로 50년간 한국은 50~70대 인구가 총 인구의 45% 수준으로 유지된다”며 “고령 친화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새로운 영시니어 시장을 만드는 기업에 기회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구매력 있는 시니어, 해외서도 주목

86세대 영시니어와 이전 시니어의 차이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구매한다는 점이다. 영시니어가 30대였던 1990년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된 시기다. 첫 인터넷 세대인 이들이 사회 요직을 거쳐 은퇴하다보니 과거 고령층과 다르게 경제력과 함께 디지털 수용성을 갖췄다. 이전 세대보다 자녀 의존도가 낮다.

1966년생 박자영(58)씨는 “아들에게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 이용법을 배운 뒤로는 식사 약속 전에 미리 검색하고 예약한다”며 “글보다 동영상 보는 게 편해서 쇼핑할 땐 유튜브 리뷰를 참고하고 ‘올웨이즈’(게임이 접목된 이커머스) 앱으로 공동구매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고령층을 새로운 소비자 집단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버니스 뉴가튼 미 시카고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은퇴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고 여행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50·60대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정의했다.

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 역시 경제력 있는 시니어에 대한 시장 조사가 활발하다. 지난 2021년 일본에서는 청년기의 추억을 살려 오토바이를 구매하는 장년층, 이른바 ‘리턴 라이더’들로 인해 연간 오토바이 출하대수가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 무역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를 인용해 “청년기에 오토바이를 타본 50·60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오래 전부터 동경해온 취미 생활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고가의 오토바이나 복고풍 디자인의 오토바이가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리서치기업 칸타 월드패널의 심영훈 사업부 본부장은 “그간 국내 기업들은 시니어 시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고령층은 늙고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며 “시니어 시장이 양적·질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소비자 만족도가 낮고 충족되지 않은 수요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년 내로 86세대 영시니어가 핵심 소비층이 될 것”이라며 “한 발 앞서 이들을 분석하고 전략적 행동을 취하는 기업이 성장 동력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860만 영시니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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