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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익, 네이버의 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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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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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도, 야구도 ‘한일전’이면 일단 흥행한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역사는 ‘일본에 더이상은 뺏기면 안 된다’라는 공감대의 뿌리가 됐다.

이 국민감정이 최근 ‘라인야후 사태’로 옮겨붙었다. 네이버 클라우드의 보안 사고를 이유로, 일본 정부가 ‘네이버와 라인야후 간 자본적·기술적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초법적이고 반자본주의적 관치(官治)다. 우리끼리는 ‘검색시장 독점 기업’이라고 때릴지언정, 그 네이버가 일본에서 얻어맞는 모양새에 여론이 들끓었다. 야당 대표의 “이토 히로부미 손자의 사이버영토 침탈”이라는 추임새까지 더해지면서 사태는 산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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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에선 네이버가 라인야후 주식을 1주라도 일본 소프트뱅크에 넘기면 ‘국익’이 훼손되는 것이요, 지분 매각을 정부가 막지 못하면 이 정부는 ‘매국’이 될 참이다. 네이버의 계산과는 상관없이 여론의 잣대가, 정치의 계산속이 그렇다. ‘이번에 쉽게 내주면 일본 정부가 또 그럴지 모른다’는 국민들의 위기감을 ‘여의도’는 재빠르게 알아채는데, 이 정부만 눈치가 없다.

하지만 이 사태의 마무리는 여론이 정한 국익이 아니라, 네이버가 판단한 실익에 따라 정리돼야 한다.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내셔널리즘이 득세하는 요즘엔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정부나 여론은 경쟁국에 큰소리를 치더라도, 기업은 실익을 따져 조용히 국경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한다.

미국이 그걸 잘한다. 미국의 국익은 중국에 첨단기술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지만, 미국 기업들의 이익은 세계 최대의 시장을 낀 중국과 잘 거래하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상무부는 중국과 관련 있는 커넥티드 차량 기술도 미국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한국 자동차 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는데, 정작 미국 기업 테슬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로부터 완전자율주행(FSD) 데이터 사용 허가를 따내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미국의 계산된 ‘성동격서’에 한국 기업들만 마음 졸이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도 좀더 차분하게 계산해야 한다. 라인의 성공 이후 네이버는 일본을 넘어 동남아·중동·북미로 나가 웹툰·클라우드 같은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을 키우고 있다. 라인야후 지분은 네이버의 현재 전략에 따라 기업·주주의 이익을 고려해 결정할 일이다. 그 지분을 쥐고 있는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업의 가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니 판단도, 책임도 기업에 맡겨야 한다. 국익에 기업을 너무 가두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국익을 가장 길게 지키는 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