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X 렌더링만 9억4600만 시간…새 유인원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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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메이와 유인원 청년 노아를 통해 진정한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전체 1500개의 컷 중 1470개의 컷에 VFX 작업이 들어갔다. 렌더링만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메이와 유인원 청년 노아를 통해 진정한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전체 1500개의 컷 중 1470개의 컷에 VFX 작업이 들어갔다. 렌더링만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인류의 시대는 가고, 유인원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면. 찰턴 헤스턴 주연의 첫 영화(1968)부터 지난 8일 개봉한 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혹성탈출4’)까지, 56년간 10편의 영화를 배출한 ‘혹성탈출’ 세계관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고릴라 앞에서 시작됐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 원작자인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1912~1994)은 고릴라들의 ‘인간적’ 표정을 보고 문득 상상했다. ‘닮았지만 처지가 다른, 인간과 유인원의 관계가 역전된 행성이 있다면’. 우주개발 붐이 일던 당시, 6개월 만에 SF소설 『혹성탈출』(1963)을 썼다.

원작의 생명력은 여전하다. ‘혹성탈출4’는 지난주 북미 등지에서 개봉해 전 세계 1억2900만 달러(약 1771억원)의, 시리즈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리부트 3부작(2011~2017) 결말로부터 300년 흐른 미래가 배경이다. 인간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인해 언어 능력을 얻은 유인원들은 지능이 퇴화한 인간을 사냥하며 진화를 거듭한다. 독수리를 길들이며 사는 주인공 침팬지 노아(오웬 티그)는 제국을 꿈꾸는 프록시무스(케빈 두런드) 일당에게 가족을 납치당한 뒤, 역시 쫓기던 인간 여성 메이(프레이아 앨런)와 힘을 합친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메이와 유인원 청년 노아를 통해 진정한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전체 1500개의 컷 중 1470개의 컷에 VFX 작업이 들어갔다. 렌더링만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메이와 유인원 청년 노아를 통해 진정한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전체 1500개의 컷 중 1470개의 컷에 VFX 작업이 들어갔다. 렌더링만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아는 유인원이 인류로부터 동물 취급을 당한 과거를 알게 된 뒤 고민한다. “원래 전부 인간 거였어.” 위성통신 장비를 되찾아 인류의 시대를 되돌리려는 메이의 말에 노아는 반문한다. “그럼 유인원은? 또다시 침묵 당하던 시절로 돌아가란 소리야?” 원작을 계승한 ‘혹성탈출4’가 던지는 질문은 자명하다.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공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제의식에선 초심으로 돌아갔지만, 비주얼은 획기적으로 진보했다. ‘메이즈 러너’ 3부작의 웨스 볼 감독이 ‘아바타: 물의 길’ 제작진을 만나 할리우드 VFX(시각특수효과)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유인원 캐릭터는 놀랍다. 거의 모든 장면에 VFX가 들어갔고, 상영시간 145분 중 33분은 장면 전체를 CG(컴퓨터그래픽)로 만들었다. 뉴질랜드의 세계적 VFX 회사 웨타FX(‘반지의 제왕’ ‘아바타: 물의 길’ 등)가 참여했다.

웨스 볼 감독의 촬영 모습.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웨스 볼 감독의 촬영 모습.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배우의 신체 움직임만 CG 캐릭터에 담던 ‘모션 캡처’에서 더 나아가 얼굴 움직임, 감정 연기까지 포착하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야외 촬영에도 접목한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혹성탈출4’는 11명의 새로운 유인원 캐릭터를 고해상도로 구현했다. 유인원들이 절벽을 기어올라 독수리 알을 훔치고, 공중에 두발로 매달리는 등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액션을 펼친다. 유인원 역의 배우가 움직임 포착용 복장 ‘포캡’을 입고 카메라 2대가 달린 헬멧을 쓴 채 연기하면 VFX팀이 이를 CG로 빚어낸 유인원 캐릭터에 반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웨타에서 캐릭터 표정을 구축하는 한국인 페이셜 모델러 김승석 씨는 “오랑우탄은 눈썹 위쪽 뼈가 웃는 듯한 형태여서 표정 묘사가 힘들었다”며 “FACS(페이셜 액션 코딩 시스템)를 이용해 감정에 따른 표정 변화를 얼굴 근육 별로 분석하며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오랑우탄 캐릭터는 배우가 목발을 짚고 연기 해 구현했다. [AP=연합뉴스]

오랑우탄 캐릭터는 배우가 목발을 짚고 연기 해 구현했다. [AP=연합뉴스]

가장 어려웠던 건 물과 유인원·맹금류의 털 표현이었다. 오랑우탄이 물에 휩쓸리는 장면은 실제 오랑우탄의 목욕 영상을 토대로, 털이 물살에 움직이고 젖어 드는 모습을 1년 걸려 완성했다. VFX 작업에 렌더링만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다.

볼 감독은 “1968년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TV로 보고 자랐다”며 “이 고전의 오마주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고 자신했다. 그는 최근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68년 영화의 속편을 만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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