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개미를 보며 의리를 생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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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얼마 전 동네를 산책하다 초등학교 담장 밖에 떨어진 목련 꽃잎 한 조각을 집어 보았다. ‘올해도 개나리로 시작된 봄은 벚꽃과 철쭉을 지나 목련으로 끝날 모양’이란 생각이 들 무렵 저만치에서 뭔가가 시선을 당겼다.

내려다보니 담장 밑에서 까만 개미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도회지에서 오랜만에 보는 개미들이라 휴대폰을 꺼내 사진도 찍었지만, 자그마한 개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하는 장면을 담는 건 쉽지 않았다.

동료 개체들 위해 페로몬 분비
화학물질로 군집의 질서 유지
목표를 공유하는 조직과 비슷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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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 생활을 하는 곤충 중 우리에게 익숙한 개미와 벌은 주로 낮에 무리로 활동하고, 바퀴벌레는 밤중에 한 마리씩 나와 활동한다. 벌목 개밋과에 속하는 개미는 복잡하게 보여도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회로 형태의 지하 단독주택에서 산다. 고대 로마의 카타콤(Catacomb)을 연상시킨다. 반면 벌은 육각형의 지상 공동주택에서 산다. 바퀴벌레는 주거형태에 상관없이 음습한 곳이면 어디든 만족하고 산다.

개미들이 일렬로 이동하는 장면은 한자문화권의 고대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개미를 ‘의(蟻)’로 작명했으니 말이다. ‘蟻’는 벌레 ‘충(虫)’과 의(義)의 합성어이다. 고대인들은 개미 무리를 보고 일찍이 ‘의’를 연상했던 것이다.

개미는 어째서 일렬로 움직일까?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군집의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 앞서가는 개미는 뒤따라오는 개미를 위해 땅 위에 페로몬을 남겨놓는다. 뒤따르는 개미는 이 페로몬을 쫓아가면 된다. 이런 식으로 개미사회는 페로몬을 매개로 집단의 의를 유지한다.

인간세계에도 의가 살아있는 조직을 보면 페로몬과 같은 뭔가가 있다. 의가 있는 조직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가 있다. 공감하는 목표가 있으면 조직의 상하 모두가 목표를 달성하려는 ‘상하동욕(上下同欲)’이 생겨난다. 누가 조직의 머리에 말하면 꼬리까지 바로 통하고, 또 꼬리를 자극하면 즉시 머리까지 전달된다. 한마디로 수미상응(首尾相應)한다. 구성원들이 목표를 공유하는 조직에선 사소한 의견의 차이나 갈등 따위는 미미해진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해치는 오기, 트집, 뒷담화 같은 것들도 저절로 사라진다. 복잡한 노사문제도 구성원들 사이에 상하동욕이 일어나면 쉽게 해결된다. 또 시간이 지나면 외부에서도 같은 기질과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서 찾아온다. 옛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동기상구(同氣相求)’라고 했다.

개미들의 움직임을 한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높은 옥타브로 인사를 건넨다. “거기서 뭐 하시오?” 돌아다보니 근처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최 선생이다. 반가운 마음에 최 선생과 근처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찻잔의 온기가 식어갈 무렵 그는 뜻밖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개미를 보면 집안 어른들이 생각납니다. 내 아버지는 홋카이도의 유바리 탄광으로 징용을 가셨지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끝없는 기침 소리와 돌아가셨을 때 들었던 상여꾼들의 만가(輓歌) 소리밖에 없습니다.” 그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희 큰 형님은 독일 루르 탄광에 가서 석탄을 캤지요. 탄광 속은 무더웠고 깊이 내려가는 갱도는 정말 무서웠답니다. 저는 큰 형님 덕분에 읍내 중학교에 가서 펜이라도 쥐어 봤지요.”

최 선생을 만난 이틀 후 초등학교 담장 밑 땅속으로 기어서 들어가는 개미들을 다시 보았다. 그날은 개미들을 보면서 어둡고 깊은 유바리 탄광의 갱도로 들어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마른 어깻죽지와 전등이 부착된 헬멧을 쓰고 루르 탄광의 깊은 갱도를 내려가는 파독 광부들의 비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들의 일터는 공간이 있는 3차원이 아니고, 2차원의 면(面)의 세계도 아닌 갱도라는 선(線)으로 된 1차원의 세계였다. 어렵던 시절 그들은 개미처럼 갱도에서 시대적 희생을 감내해 가며 청춘을 보냈다.

흔히들 조직이나 친구 사이에만 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금 넓게 생각하면 세대 간에도 의가 필요하다. 시대적 희생을 감내한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의를 보여줘야 할까? 우선 그들이 어떤 고난을 겪고 희생했는지 인(仁)의 마음으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앞 세대의 노고를 인정하고, 감사하며, 의를 실천하는 길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도 잊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찍이 맹자는 의를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설명했다. 이는 흔한 말로 ‘쪽팔리지’ 않게 살라는 뜻일 것이다. 5월은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하는 보은(報恩)의 달, 6월은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보훈(報勳)의 달이다. 잘 생각해보자. 결국 사람의 격(格)은 결초보은(結草報恩)과 배은망덕(背恩忘德) 사이에서 결정된다. 보은이나 보훈의 밑바탕엔 의가 있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