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첨단기술로 증오·전쟁 대신 이해·소통의 축제 선뵌 비디오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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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박물관에는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예술 활동을 펼친 결과인 미술품·예술품이 전시돼 있죠. 그림·조각·도자기 등과 달리 영상의 경우 예술에 편입된 역사가 이제 백여 년으로 꽤 짧은데요. 그중에서도 TV와 비디오를 활용한 비디오 아트의 미술관·박물관 전시는 불과 수십 년 정도죠. 비디오 아트의 주류 예술 진입 선두 주자는 바로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에서 백남준이 기획한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주요 장면을 감상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에서 백남준이 기획한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주요 장면을 감상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에서 미학, 독일에서 철학·미술사·음악학을 공부하며 현지 예술가들과 다양한 교류를 했어요. 그는 통념을 깬 음악으로 유명한 미국의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에 감명받아 1959년 피아노·바이올린 등 서양 전통 악기를 파괴하는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공연해 표현성을 인정받으며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죠.

백남준의 예술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두 가지는 텔레비전과 비디오카메라예요. 그는 1964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비디오 아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다양한 작품을 남겼죠. 현대를 사는 우리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PC·휴대전화 등으로 각종 영상을 보는 일이 익숙하죠. 또한 누구나 카메라·휴대전화로 영상을 촬영·편집해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송출할 수 있어요. 반면 1932년에 출생한 백남준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던 당시 최신 기술은 위성을 이용한 생방송과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였죠.

로봇이지만 녹음된 음성을 재생해 말하고 콩으로 배변도 했던 '로봇 K-456'는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화된 기계다. ⓒ백남준아트센터

로봇이지만 녹음된 음성을 재생해 말하고 콩으로 배변도 했던 '로봇 K-456'는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화된 기계다.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는 백남준이 남긴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증진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백남준아트센터가 있어요. 김지우·전상윤 학생기자가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전시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이하 '일어나 2024년이야!')에서 김윤서 학예사와 만나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크기가 다른 세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첼로 형상으로 쌓아 올린 'TV 첼로'(2002), 기계이지만 인간처럼 출생과 사망의 과정을 거친 '로봇 K-456'(1996), 부처 조각상이 카메라에 실시간 촬영 중인 자기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TV 부처'(1974), 기술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한 'TV 물고기'(1975)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보았던 그의 작품들로 가득했어요. 텔레비전들이 꽃송이처럼 피어있는 'TV 정원'(1974)을 살피던 상윤 학생기자가 "전시 제목을 '일어나 2024년이야!'라고 지은 이유"를 궁금해했죠.

백남준이 크기가 다른 세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쌓아 올려 첼로 형상으로 만든 비디오 조각 'TV 첼로'.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이 크기가 다른 세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쌓아 올려 첼로 형상으로 만든 비디오 조각 'TV 첼로'. ⓒ백남준아트센터

여러분은 빅브라더(big brother)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용어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9년 간행한 소설 『1984』에서 유래했죠. 『1984』는 미디어 감시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 1984년의 미래 사회를 그려 정보통신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이 인류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담아냈죠. 백남준은 조지 오웰이 기술 감시망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로 그렸던 1984년이 되자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위성 송출을 활용해 『1984』에 대한 응답을 내놓았어요. 바로 미국 뉴욕 WNET 방송국과 프랑스 파리 FR3 현장을 위성으로 연결해 생방송으로 1시간 동안 100여 명의 예술가가 춤·노래·시·코미디 등이 섞인 쇼를 보여줬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입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는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 미국의 무용가 머스 커닝햄, 독일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 미국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 등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의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가 담겼는데요. 미국의 밴드 오잉고 보잉고도 이 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어나 1984년이야!'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죠. 전시 제목은 이 노래를 2024년으로 재설정한 겁니다."

부처 조각상이 카메라에 실시간 촬영 중인 스스로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설치 작품 'TV 부처'. ⓒ백남준아트센터

부처 조각상이 카메라에 실시간 촬영 중인 스스로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설치 작품 'TV 부처'. ⓒ백남준아트센터

1980년대에 위성 방송 시스템은 몇몇 방송국과 미 항공우주국(NASA) 정도만 접근이 가능한 첨단 기술의 결정체였어요. 위성은 타국 정찰에도 쓰였기 때문에 거대한 국가적 자본을 투입한 냉전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죠. 즉, 최첨단 기술이 인류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우려가 어느 정도 현실화한 시대였어요. 백남준은 이 첨단 기술을 증오와 전쟁이 아닌 이해와 소통을 위한 축제에 사용한 겁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2500만여 명의 시청자들이 이 대형 프로젝트를 관람했어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서로 연결된 세계에 대한 갈망은 백남준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제예요. 백남준은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한국전쟁을 겪었어요. 또한 그가 예술 활동을 활발히 하던 1960~1980년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냉전 시대였습니다. 즉, 평생에 걸쳐 전쟁을 계속 목도한 것이죠. "백남준은 증오와 전쟁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봤기 때문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했어요. 비디오라는 매체에 다양한 세계 문화를 담아서 보여주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죠."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영감을 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을 수 있다.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영감을 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을 수 있다.

'일어나 2024년이야!'에 전시된 다른 작품에서도 평화와 화합을 추구했던 백남준의 일관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과달카날 레퀴엠'(1977)은 서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을 백남준이 동료 샬럿 무어먼과 함께 방문해 만든 작품입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로 미군으로 구성된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지역이었는데요. 백남준과 살럿 무어먼은 참전 군인과 주민을 인터뷰하고, 섬 곳곳에서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펼쳤어요. 그리고 그가 섬에서 벌인 활동과 전쟁 다큐멘터리 필름을 교차편집해 예술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했죠.

이렇게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인류의 소통과 평화를 위한 예술 활동을 펼쳤던 백남준. 이는 1960년대에 개인이 비디오를 자유롭게 녹화할 수 있는 장비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 전까지 영상을 제작해 편집하는 시설을 갖추는 것은 방송국 정도의 자본이 있어야 가능했죠. "백남준은 1965년 10월 뉴욕에서 최초의 비디오 녹화기 모델인 소니사의 '포타팩'을 구입했어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가 세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미국을 첫 공식 방문 중이었는데, 백남준은 교황을 반기는 행렬을 촬영해 그날 저녁 동료 예술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상영했죠. 백남준이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홍보하는 기록물을 만들어 알리고, 상영한 행위를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평가합니다."

21세기 광역 통신망이 새로운 실크로드가 될 것이라 예견한 백남준의 메시지가 담긴 '칭기즈 칸의 복권'. ⓒ백남준아트센터

21세기 광역 통신망이 새로운 실크로드가 될 것이라 예견한 백남준의 메시지가 담긴 '칭기즈 칸의 복권'. ⓒ백남준아트센터

지우 학생기자가 "비디오 아트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인 시도였을 텐데, 백남준의 작품이 처음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해요"라고 말했어요. "요즘은 현대미술관에서 조각·그림 외에 영상 작품도 많이 전시되는데요.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던 1960년대에 영상은 예술이 아닌,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콘텐트로 인식됐어요. 그래서 백남준의 초기 비디오 아트인 '매체는 매체다'(1969)는 미국 보스턴 WGBH 방송국, '글로벌 그루브'(1973)는 미국 뉴욕 WNET와 협업해 TV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방송됐죠. 비디오 아트는 1970년대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 작품을 전시하고 소장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주류 미술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어요."

위성을 통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생방송과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로 만든 비디오 아트가 최첨단 예술이었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휴대전화 하나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소통과 평화를 외쳤던 백남준의 정신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요. '일어나 2024년이야!'에서는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기념해 그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 'SARANGHAEYO 아트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어요. 이들의 신작을 유튜브에서 라이브스트리밍으로 공개한 뒤, 이 영상을 녹화해 전시실에서 상영 중인 것이죠.

바밍타이거와 류성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 'SARANGHAEYO 아트 라이브'. ⓒ백남준아트센터

바밍타이거와 류성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 'SARANGHAEYO 아트 라이브'. ⓒ백남준아트센터

기술의 발전을 자신의 예술에 접목해 평화·공존·소통을 기원했던 백남준. 그의 작품을 담는 액자였던 브라운관은 어느새 LCD·OLED 모니터와 휴대전화 화면으로 대체됐어요. 하지만 백남준의 작품은 '기술의 발전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지만, '빅브라더'에 의해 쉽게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백남준은 최첨단 기술이 인류를 감시 통제하는 덫이 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우려에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리다'라고 응답했죠. 2024년을 사는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전상윤(왼쪽)·김지우 학생기자가 TV가 마치 꽃처럼 수풀이 우거진 정원에 배치된 백남준의 'TV 정원'을 살폈다.

전상윤(왼쪽)·김지우 학생기자가 TV가 마치 꽃처럼 수풀이 우거진 정원에 배치된 백남준의 'TV 정원'을 살폈다.

'일어나 2024년이야!'

기간: 2025년 2월 23일까지

장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백남준아트센터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월요일·1월 1일·설날·추석 당일 휴관)
관람요금: 무료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사실 미술관에 가보거나 예술 작품에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백남준아트센터를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아주 궁금하고 긴장됐어요. 아트센터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일어나 2024년이야!'라고 적힌 큰 포스터가 눈에 띄었어요. 생각한 것보다 전시관이 굉장히 예뻤고, 작품들이 멋있어서 바로 관심을 가지게 됐죠. 출생과 사망을 경험한 '로봇 K-456', 어항과 텔레비전 화면이 공존하는 'TV 물고기', 우거진 수풀 속에 텔레비전들이 꽃송이처럼 피어있는 'TV 정원' 등의 작품이 인상 깊었어요. 텔레비전으로 이러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백남준의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일어나 2024년이야!'를 관람한 뒤 예술에 관심이 생겼어요. 예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TV나 기계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도 관람해 보길 권합니다.

김지우(서울 대치초 5) 학생기자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을 전시한 '일어나 2024년이야!' 취재를 다녀오면서 제가 갖고 있던 예술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실에 들어섰더니 나무와 풀이 있는 정원에 텔레비전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TV 정원'이 있었어요. 정원에 놓여있었던 텔레비전들은 정말 독특했고, 흥겨운 영상이 나오고 있었죠. 잠시 '숲에서 쉬면서 음악을 듣는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은 우리가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자유롭게 소통하는 즐거운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첼로를 연주하는데요. 그래서 크기가 다른 세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첼로 형상으로 만든 'TV 첼로'를 보고 백남준 선생님의 기술과 예술의 조합에 또 한 번 놀랐어요. 현에 활이 닿을 때마다 전자음이 만들어지고, 영상도 활에 반응하더라고요. 저도 TV가 연결된 첼로를 언젠가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즐거운 취재를 마쳤어요.

전상윤(경기도 낙생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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