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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안정 땐 미국 관계 없이 금리 인하·재정 확대 검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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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4월 외식 물가 상승률은 3.0%로,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2.9%)보다 0.1%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은 3년째 지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4월 외식 물가 상승률은 3.0%로,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2.9%)보다 0.1%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은 3년째 지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비용 상승형 인플레가 초래한 내수침체 해법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국제 유가와 환율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재발이 우려되고 있다. 4월 소비자물가(전년동월대비)는 2.9% 상승해서 3월의 3.1%에서 다시 2%대로 낮아졌지만, 외식 물가와 농산물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같이 잘 떨어지지 않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것이다. 물가가 지금과 같이 높아질 경우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금리 인하가 늦춰져 고금리 지속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며 금융 부실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은 실질 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줄여 내수 경기를 침체시킬 뿐만 아니라 부의 불평등을 심화해 큰 정부에 대한 수요를 늘어나게 한다는 점에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경기 호황이 인플레 초래
금리 높여 물가 낮출 여지 있어

한국, 유가·환율이 물가 자극
고금리 정책 부작용은 불가피

원유·원자재 등 세금 낮추고
공공요금 인상 시기 미뤄야

금리 인상, 물가 상승 기대 낮춰

이러한 부작용은 물가를 낮추기가 어려운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의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크게 수요 견인형과 비용 상승형으로 구분된다. 경기 호황이나 통화량 증가로 실물의 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수요 견인형의 경우는 금리 인상으로 총수요를 줄여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제 유가나 원자재 가격, 임금과 환율 상승으로 원가가 높아져 물가가 오르는 비용 상승형은 원인이 된 원유 가격이나 환율이 내리지 않는 한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낮추기는 어렵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그렇다면 통화 당국은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에도 왜 금리를 높여 대응하려고 할까. 이는 두 개의 간접적 채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채널은 금리를 높일 경우 경기 침체로 원유나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어 물가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같은 필수재 경우는 비록 금리가 높아져도 수요를 줄이기가 어려워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 기대 채널이다. 금리를 높이는 긴축 통화 정책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춰서 임금 상승 폭을 줄일 수 있다. 합리적 기대학파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거나 생산성 제고와 기술 진보로 비용상승형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채널 역시 간접적이어서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우며 생산성 제고와 기술 진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금리 인상의 부작용 또한 크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기 침체가 심화할 수 있고 금융 부실이 늘어나 금융 위기나 외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의 경우라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 정책을 선택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통화 당국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따라 그리고 금리 인상의 득실을 비교해서 자국의 상황에 맞는 정책 선택을 하게 된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자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이득보다 경기 침체와 금융 부실로 인한 손실이 더 크면 금리 인상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모두 금리를 큰 폭으로 높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양국이 서로 다르다. 미국은 원유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높아지는 비용 상승 요인도 있지만 경기 호황으로 임금과 주택임대료가 올라 물가가 높아지는 수요 견인적 요인이 더 크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원유 가격과 환율이 높아져 물가가 오르는 전형적인 비용 상승형이다. 한국은 금리를 높여 물가를 잡기 어렵지만, 미국은 금리를 높일 경우 수요를 줄여 물가를 일정 부분 낮출 수가 있다.

일본은 자국의 경기 부양을 더 중요시해서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도 내수 경기를 더 중요시해서 한국만큼 금리를 큰 폭으로 높이지 않았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도 미국의 금리 인하 전에 금리를 내릴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모두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의 경우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낮추기가 어렵고 대신 경기 침체와 이자 부담 증가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금리는 큰 폭으로 높였지만 내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시중 유동성을 늘렸으며 재정도 확대하는 보완책을 사용했다.

자본 유출 우려에 금리 올린 한국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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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금리를 큰 폭으로 높였다. 그 결과 2022년 7월 6.3%였던 물가 상승률을 지난 3월 2.9%로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금리 인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국제 유가와 환율이 크게 낮아진 데도 그 원인이 있다. 최근 유가와 환율이 다시 높아지자 고금리 지속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재발이 우려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이 고금리 정책을 쓴 또 다른 배경은 한·미 간의 금리 차이로 인한 자본 유출 우려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상단 기준)의 금리 차는 현재 2%포인트다. 금리 차이는 채권 투자 자금의 유출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높아질 경우도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 자본 유출이 있게 된다. 비록 금리 차이가 나도 환율이 하향 안정되면 자본 유출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그동안의 금리 인상 부작용으로 내수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으며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상공인의 폐업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기에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이러한 부작용은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된다.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로 환율이 오르며, 수입물가가 더욱 높아질 수 있고,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져 경기 침체와 함께 금융 부실도 확대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재발에 대응하고 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고금리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환율이 안정될 경우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선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률이 2%대에서 안정되고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 뒤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한국은 내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만큼 비록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기 전이라도 금리 인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지 않고, 환율만 안정되면 자본유출의 규모도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채권 자금 유출은 금리 차이와 환율에 의존하지만, 주식 투자 자금은 금리 인하가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유입될 수 있어 금리 인하의 이점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금리와 환율 정책

또 다른 해법은 내수 진작을 위해 확대 재정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고금리의 부작용인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과 재정 지출 확대라는 정책 조합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 회복 기간에 긴축 통화 정책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확대 재정 정책의 조합을 사용해 성장률을 높였으나 지난해부터 긴축 통화 정책과 긴축 재정 정책의 조합을 선택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중은 2020년 5.8%로 늘어났으니 지난해 3.9%로 줄였다. 물론 건전성 기준인 3%를 넘고 있으나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특수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했다고 할 수 없다. 내수 부진으로 서민과 중소상공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내수 경기 침체 지속으로 인한 국민의 낮은 경제 정책 지지도를 고려하면 재정을 단기간 확장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재정 건전성 악화의 비용보다 내수 경기 회복의 이익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정책과 환율 정책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재정 정책 필요성이 커지는 배경이다. 금리 정책은 가계 부채와 경기 침체 사이에서, 환율 정책은 자본 유출과 수출 증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환율 개입, 변동성 낮추기에 치중해야

지난 2월 2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공공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2.2% 올랐다. 2021년 10월 6.1% 오른 뒤 2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물가 상승 기여도(전년동월비)를 보면 시내 버스료가 가장 컸고 택시요금, 외래진료비, 도시철도료, 치과 진료비, 입원진료비, 하수도료 등 순이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공공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2.2% 올랐다. 2021년 10월 6.1% 오른 뒤 2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물가 상승 기여도(전년동월비)를 보면 시내 버스료가 가장 컸고 택시요금, 외래진료비, 도시철도료, 치과 진료비, 입원진료비, 하수도료 등 순이었다. 연합뉴스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환율을 안정시키고 공공요금 인상을 연기할 필요도 있다. 최근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환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 4월에만 60억 달러 감소해 외환보유액이 4132억달러로 줄었다. 4000억달러 대에 있는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환투기 증가로 환율이 더욱 오를 수 있다. 외환 당국은 환율을 낮추기 위한 과도한 개입보다 변동성을 줄이는 개입에 치중해 환율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높여 농산물과 같은 생활 물가를 높이고, 생활 물가는 시차를 두고 임금 인상을 압박한다.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책 당국은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원유와 원자재에 대한 관세와 세금을 인하하고,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 인상도 환율과 원유 가격이 안정되는 시기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 대통령,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김범석 경제금융비서관.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 대통령,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김범석 경제금융비서관.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부터 물가 안정에 정책의 초점을 두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춰왔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지금 환율과 유가가 오르며 인플레이션 재발이 우려되고 있다. 물론 미국 금리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조기에 인하되면 환율은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3%대의 물가 상승률이 유지되는 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Fed가 금리를 조기에 인하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팀은 인플레이션 재발에 대비하고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신중하고 현명한 정책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