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제원의 시선

대한축구협회는 뭐하는 조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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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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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KFA)는 뭐하는 조직인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축구대표팀이 최근 잇따른 ‘참사’를 겪으면서 든 생각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4강전에서 FIFA 랭킹 87위의 요르단에 져 탈락했다.

이걸 ‘참사’라고 부르면 과장일까. FIFA 랭킹 23위의 한국은 누가 봐도 한 수 아래의 요르단을 만나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쩔쩔매다 0-2로 졌다. 상대전적 3승 3무로 한 번도 진 적 없는 팀에게 무릎을 꿇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대회가 끝난 뒤 졸전을 펼친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막내 이강인이 주장 손흥민에게 주먹질하는 등 대표팀 내부에서 선수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은 옛말
참사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마련해야

지난달 26일 열린 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선 두 번째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었다. 역시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인도네시아와의 8강전에서 져서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카타르 도하였다.

두 차례 ‘도하 참사’를 겪고도 대한축구협회는 짤막한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축구협회는 인도네시아에 패배한 당일 오후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하여’란 제목의 짧은 사과문을 올렸다. 축구협회는 이 글에서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서 “향후 선수와 지도자 육성, 대표팀 운영 체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내 더 이상 오늘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냉정한 성찰의 시간이다. 대한축구협회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 뒤 그 자리에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임시로 앉힌 게 바로 축구협회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던 황선홍 감독은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한꺼번에 맡아 ‘투잡’을 뛰었다. 한시적이라고 해도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황선홍 감독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를 대신해 축구대표팀을 맡을 지도자는 넘쳐날 정도였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이끌면서 동남아시아 축구에 정통한 박항서 감독이 대표적이다.

두 차례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고도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축구협회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마치 도마뱀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꼬리 자르듯 감독만 내쳤을 뿐이다. 대표팀 내부에서 선수들이 치고받고 싸워도,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약팀에 져서 망신에 가까운 참사를 당해도 축구협회의 회장과 임원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축구협회는 “오늘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대책도, 비전도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축구협회는 지난 2022년 ‘저팬즈 웨이(Japan’s Way)’를 발표하면서 ‘2050년 월드컵 단독 개최 및 우승’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었다. 일본은 이 목표를 천명한 뒤 축구 유망주를 연령대별로 촘촘하게 나눠 양성하고 있다.

축구 강국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는 이미 1988년 파리 교외의 클레르퐁텐에 국립 축구연구소를 건설한 뒤 체계적으로 유망주를 길러내고 있다. 프랑스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도 이런 투자의 결실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뭘 했는가. 내년 초에 천안에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가 개장한다는데 이렇다 할 마스터플랜이 보이지 않는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감독만 뽑으면 능사인가. 참가국이 48개 나라로 늘어난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축구대표팀의 성적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한국 축구가 중국에 지고, 인도네시아에 밀리고, 태국에 무릎 꿇어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도 이런 말이 나올까. 축구는 이제 전 세계의 공통 언어이자 국력의 총화다.

2022년 대한축구협회의 1년 예산은 124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정부 보조금이 366억원, 스포츠토토 복표 수익이 221억원이었다. 축구협회 예산의 47%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뜻이다. 축구협회 예산의 절반 정도를 공적 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축구협회가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방법은 단 하나다. 정부가 나서서 축구협회의 거버넌스를 개선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