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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 푸틴 5번째 대관식…"서방과 대화, 대등한 조건서만 가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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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취임식을 열고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전날엔 전술핵무기 훈련을 지시하며 서방에 다시 핵 경고장도 날렸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대궁전 안드레옙스키 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오른손을 헌법 사본에 올리고 취임 선서를 했다. 러시아 국가 연주 후 이어진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며 ‘단결’을 강조했다.

“서방과 대화 피하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 어렵고 중요한 시기를 위엄 있게 보내고 더 강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는 단결된 위대한 국가이며, 함께라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우리가 계획한 모든 것을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임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서방과 대화를 피하지 않는다”며 “안보와 전략적 안정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대등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극 세계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계속 협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인 87.28%로 5선에 성공, 2000·2004·2012·2018년에 이어 집권 5기 시대를 열었다. 이번 임기는 2030년까지 6년간이다. 임기를 다 채우면 30년간 집권하는 셈이어서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린다. 러시아는 2020년 헌법을 개정해 푸틴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둬 푸틴은 84세까지 권좌에 머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 145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로커스 시티홀 테러,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옥중 사망 등으로 국내 상황도 불안정해 이날 푸틴 대통령은 내부 결집 강화를 시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는 “수백 년 된 가족 가치와 전통에 대한 지지가 공공 및 종교 단체, 정당 및 모든 수준의 정부를 계속 단결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이어 “빠르게 변화하는 복잡한 세계에서 우리는 자급자족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우리 역사에서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며 “헌법에 명시된 국가 원수의 모든 권한을 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여러분의 신뢰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다. 우리는 함께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일 취임식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 취임식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전술핵무기 훈련도 지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을 담당하는 남부군관구의 미사일 부대와 공군·해군이 참여하는 비전략 핵무기 준비·배치 연습을 포함한 군사 훈련을 ‘가까운 미래’에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당국자들의 도발적인 발언과 위협에 대응해 러시아 영토를 지키고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훈련을 명령했다면서다.

러시아 정부는 이런 훈련의 배경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의 발언을 꼽았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언급했고, 캐머런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무기가 러시아 본토 타격에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랑스 대통령과 영국 외무장관의 발언은 전례 없는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수사”라고 주장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반서방 연대 결속을 추진하며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중국을 택했다. 15일 전후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연내 북한 방문도 논의되고 있어 북·중·러 밀착이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일부 국가, 취임식 보이콧

크렘린궁은 이날 취임식을 국내 행사로 간주해 외국 정상을 초대하지 않고 러시아에 주재하는 공관장을 초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선거의 불공정성 등을 이유로 미국·영국·독일·캐나다·스페인·이탈리아·오스트리아·벨기에 등 서방 다수 국가들은 취임식을 보이콧했다. 이도훈 주러시아 한국 대사는 참석했다.

지난 2월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푸틴의 취임식 전 영상을 통해 “우리나라는 거짓말쟁이, 도둑, 살인자가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의 최근 임기가 우크라이나에서의 ‘무의미한 전쟁’과 러시아에서의 정치적 탄압이 특징이었다며 “20년이 넘는 집권 동안 생활 수준을 높이겠다고 푸틴 대통령이 약속해 왔지만 공허하고 기만적이었다. 이런 일이 25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7일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헌법에 오른손을 올려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헌법에 오른손을 올려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은 미국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후임자를 찾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에 따르면 SVR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20일 임기가 만료되면 정당성을 잃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등과 접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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