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철도∙도로 韓기술 깔리나…수십조 걸린 韓기업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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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폴란드 인프라 포럼 참관기>  

지난달 25일 바르샤바에서 열린 도화-폴란드 인프라사업 협력 포럼. 바르샤바=강갑생 기자

지난달 25일 바르샤바에서 열린 도화-폴란드 인프라사업 협력 포럼. 바르샤바=강갑생 기자

 지난달 25일 오전 10시(현지시각)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한 호텔에서 현지 정부기관과 공기업, 유관협회, 업체 관계자 등 220여명을 대상으로 국내기업이 단독으로 마련한 포럼 겸 기업설명회가 열렸다. 국내의 대형 건설사들조차 폴란드 현지에서 개최한 적 없는 행사를 이례적으로 기획한 곳은 ‘도화엔지니어링’(이하 도화)이었다.

 철도와 도로, 항공, 수자원, 에너지, 도시 분야의 설계와 감리 및 사업관리 등을 주력으로 하는 도화는 임직원 3100여명에 연간 수주액이 1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엔지니어링업계 1위 업체다. ‘도화·폴란드 인프라사업 협력 포럼’이란 명칭으로 진행된 행사엔 폴란드 개발기금 및 지역정책부 등 폴란드 정부기관은 물론 폴란드 신공항사(CPK)·폴란드 철도공사(PKP) 같은 발주기관과 여러 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 루마니아와 헝가리, 체코, 스페인 등 다른 유럽국가의 정부 기관과 업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이날 축사에서 김식 주폴란드 공사는 “폴란드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 조성에는 도화엔지니어링 같은 민간기업의 역할이 크다”고 밝혔다. 피오트르 스쿠라 폴란드 엔지니어링협회 부회장은 “폴란드와 한국은 외세의 지배, 급속한 발전 등 유사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앞으로 더욱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화엔지니어링은 인천공항 4단계 확장 사업에도 참여했다. 연합뉴스

도화엔지니어링은 인천공항 4단계 확장 사업에도 참여했다. 연합뉴스

 이어 도화의 이수진 전무(기업 소개), 이석호 전무(교통), 이기석 상무(수자원), 박창현 전무(에너지), 유창민 부사장(도시)이 차례로 나서 기업 현황과 사업실적, 기술력 등을 소개했다. 특히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도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주요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소개될 때마다 참석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포럼을 주도한 정수동 도화 사장은 “지난해 6월 폴란드가 발주한 고속철도 PR7 노선(카토비체~국경~오스트라바 구간)의 설계용역(약 450억원)을 수주한 걸 계기로 폴란드 각 분야에 도화의 기술력을 제대로 알려 향후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포럼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앞서 도화는 2년 전엔 우리의 고속철도 기술력을 홍보하는 행사를 국가철도공단과 함께 현지에서 개최한 바 있다.

 폴란드 고속철도 설계용역 따내  

 행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도화가 보다 공격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 지난해 9월 현지 엔지니어링업체를 인수해 만든 '도화폴스카'의 한종석 법인장은 “포럼 뒤에 체코와 스웨덴 회사들이 찾아와 우리 측에 폴란드 발주사업에 대한 공동입찰을 제의해왔을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1957년 설립된 도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목엔지니어링 회사로 국내의 내로라하는 굵직한 인프라 사업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파키스탄 등 77개국에서 800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따내 수행한 바 있다.

페루 친체로 신공항 조감도. 자료 한국공항공사

페루 친체로 신공항 조감도. 자료 한국공항공사

 특히 페루에선 현지법인까지 설립해 도시철도와 공항 등 100개 안팎의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마추픽추'로 향하는 새로운 관문이 될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에선 한국공항공사 등과 손잡고 350억원 규모의 사업총괄관리(PMO)를 따내기도 했다.

 그러던 도화가 폴란드를 비롯한 루마니아와 체코 등 중·동유럽 지역의 인프라 사업에 새롭게 눈길을 돌리게 된 건 막대한 투자 규모 때문이다. 국가별로 철도와 도로 등 각종 인프라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이들 국가에는 EU 차원에서 인프라 개발 등을 위한 막대한 지원금이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화와 현지 공관 등에 따르면 폴란드의 교통 인프라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으로 약 320억 유로(약 4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철도분야는 2032년까지 고속철도 노선 신설, 기존 노선 개선, 철도 차량 및 시스템 현대화 등에 약 390억 유로(약 57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폴란드의 고속철도 노선 계획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폴란드의 고속철도 노선 계획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도로 분야도 같은 기간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로 신설 및 개선사업에 약 170억 유로(약 23조원)의 투자가 예상된다. 폴란드는 특히 새로 추진하는 바르샤바 인근의 쇼팽신공항을 중심으로 유럽의 주요 거점도시를 고속철도로 빠르게 연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공항과 고속철도를 결합해 교통허브를 구축하려는 취지다. 도화는 이 중 고속철도 PR7의 설계용역을 따낸 데 이어 PKP가 발주한 2개 철도사업에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루마니아, 철도 투자만 58조 예상 

 루마니아도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낙후된 도로와 철도 네트워크를 정비하기 위해 수십조원이 넘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수동 사장과 이석호 전무 일행이 루마니아 교통인프라부(MOTI)를 방문해 차관·메트로 청장 등과 면담한 자리에서 루마니아 측은 철도와 지하철 건설 및 연장·개량 등 11개 사업에 총 397억 유로(약 58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루마니아 교통인프라부에서 정수동 도화 사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이오누트 교통인프라부 차관(왼쪽에서 여섯번째) 등이 면담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쿠레슈티=강갑생 기자

지난달 29일 루마니아 교통인프라부에서 정수동 도화 사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이오누트 교통인프라부 차관(왼쪽에서 여섯번째) 등이 면담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쿠레슈티=강갑생 기자

 이 가운데 도화는 삼성물산(건설부문)과 손잡고 수도인 부쿠레슈티의 지하철 4호선 연장사업 수주에 나설 계획이다. 연장 10.8㎞에 예상 사업비는 25억 유로(약 3조 7000억원)다. 이석호 전무는 “루마니아는 상대적으로 엔지니어링 기술이 부족해 외국업체의 참여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체코도 낙후된 철도망의 현대화와 초고속열차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도화는 또 현지법인인 도화폴스카를 통해 발트해, 아드리아해 및 흑해의 세 바다 근처에 위치한 13개 국가의 협력 플랫폼인 3SI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특별회원 우크라이나)의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이 지역에서 발주가 예상되는 프로젝트 규모만 약 235조원으로 예상된다.

유럽 13개 국가의 협력플랫폼인 3SI 국가 위치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유럽 13개 국가의 협력플랫폼인 3SI 국가 위치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하지만 중·동유럽 진출엔 난관도 적지 않다. 우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입찰 과정이 현지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확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입찰서류 준비에도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이석호 전무는 “국가마다 현지의 고유문화가 있는 데다 각 국가에 적합한 프로젝트 관리 및 접근 방식이나 협상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고 전했다.

 또 입찰을 진행할 때 한국에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 자격조건들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 이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 준비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중·동유럽이 우리 기업에 기회의 땅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수동 사장은 “국내 교통인프라 시장은 좁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해외 진출이 살길”이라며 “폴란드를 전초기지로 해서 중유럽과 동유럽으로 사업영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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